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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사 동식물 천도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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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03년 08월 29일 (11:52)조회수조회수 : 2,737
뭇 생명들 극락에 오르소서 ! 7월 6일은 지난해 이어 두 번째로 동식물천도재를 하는 날이었다. 행사 때마다 산사로 오르는 길이 차량으로 붐비는 모습이 싫기도 하려니와, 인간 때문에 죽어간 동식물을 천도하는 날이기에 이 날만큼이라도 내 차 바퀴에 혹시 개구리 한 마리 다칠까 걱정되고, 애써 날개를 키워 나온 작은 나방들이 차창에 부딪쳐 쉬 죽을까 염려스런 마음에, 진고개로 오르는 큰길가 빈터에 차를 세우고 만월산 계곡 물소리 들으며 현덕사 도량까지 두 발로 걸어서 가보고 싶었다. 받아놓은 날짜가 긴 장마철 한가운데여서 비올까봐 마음도 조렸었지만, 그날의 구름들이 종일토록 비를 끌어안고만 있었던 것은 동식물 영가들이 오고가기 좋으라는 부처님의 가피인가 싶었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신도님 덕택(?)에 편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다시 발동하여 기어코 차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큰 도로에서 1.5㎞, 멀지도 않은 그 길이 지겨울까 싶어 걸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짧은 시간마저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자금자금 챙기시는 현덕사 주지스님의 소리 없는 법문인지, 굽이굽이 계곡 길을 돌 때마다 하나씩 얼굴 내밀어 반겨 주는 현수막들, “산사랑 물사랑 인간사랑 자연사랑” “가족을 부처님 같이…….” “탐·욕심을 버린 마음, 그 자리가 극락이다” 함축된 몇 개의 낱말 속에 담겨있는 크고 깊은 뜻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달리던 차가 숨이 가빠질쯤에 한 글귀가 눈앞에 나타나서 백 마디 설명을 대신해 주었다. “뭇생명들 극락에 오르소서.” 요즘 아이들 말로 단연 캡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라고 하시며 항상 환경의 소중함을 말씀하시던 주지스님, 그 분은 나무와 풀꽃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며 식물도 분명히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임을 강조하곤 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풀꽃들의 잠자는 모습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이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런 분이기에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간 동식물의 영혼까지 천도하기를 기원하며 환경종찰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흩어진 생각을 모으고 법당으로 향하기 전에 또 하나 신선한 충격과 함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었다. 절 마당에 정성껏 차려진 제단과 색다른 영정과 동식물의 위패들은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슬프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했다. 어린이 불자들이 직접 그려 붙인 동식물 영정들은 알록달록 삐뚤삐뚤……. 신기하다 못해 참으로 경이로웠다. 천진한 동심을 그대로 나타낸 뱀·개구리·달팽이·나비·토끼·가지가지 풀꽃과 이름 모를 나무들, 그들이 모두 극락으로 가기를 간절히 빌며 단풍잎 같은 손으로 그린, 대한민국에 단 하나밖에 없을 독특한 영정이었다. 법당에서 먼저 법회가 있었다. 동참대중들이 너무 많았다. 서울, 경기, 인천, 그 먼 데 사람들은 어찌 알고 그리도 많이 몰려 왔는지, 뜰에 자리를 만드느라 처사님들도 분주했다. 자기 집일이라면 저리도 열심히 하랴. 온화한 표정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그 모습들이 멋지다 못해 거룩해 보였다. 멍석도 깔고 두루마리 비닐도 펼쳐졌다. 귀로만 듣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이 없었다. 절 마당은 온통 법비 내리는 법당이 되고 말았다. 그토록 세련된 신도들의 수행 자세는 평소 주지스님의 세세한 가르침과 인간미 넘치는 포교 덕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옥에 티는 있기 마련이었다. 벌개미취가 보랏빛 꽃을 가득 피운 법당 바로 앞 꽃밭에 자리를 펴고 수없이 절을 하는 분도 있었다. 꼭 부처님이 쳐다보여야 하는가. 부처님은 마음속에 계신다는데……. 더구나 동식물천도재를 지내는 날에 풀꽃을 짓이기며 절을 올려야 부처님의 예쁨을 받을 것인가. 용기가 없어 말리지 못한 나도 공범자인 것 같아 씁쓸했다. 수암 큰스님을 따라 ‘나무대방광불화엄경’을 독송하면서 몇 년 전 38번 국도에서 섬뜩한 기분에 룸미러로 보았던 광경 - 길 건너다 내 차에 치어 꼬리 치켜들고 펄떡이던 작은 뱀 - 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고 그 미물의 극락왕생을 진심으로 빌었다. ‘뭇생명들 하늘에 오르다’라는 주제의 진혼 무는 신도들의 영혼까지 깨끗이 씻어 주었다. 고을 무용단! 숨소리에도 날아갈 것 같은 얇은 소매 나래 짓과 떠도는 영가들을 모두 빨아들일 것 같은 그윽한 얼굴 표정, 애달프게 고운 그들의 춤사위 부처님에 대한 고귀한 믿음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기에 샘솟아 오르는 것이리라. 이 작고 소박한 산사에서 그토록 훌륭한 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잔잔한 감동이 되어 출렁거렸다. 신도들의 눈높이를 높여 주려는 주지스님의 큰 뜻이 아니고서는 백련보다 하얀 빛깔로 그다지도 곱게 폴폴 날리우는 춤을 어디서 감히 볼 수 있었을까? 현종스님 감사합니다. 천도 의식을 모두 끝내고 점심 공양을 했다. 눈치 같은 것은 볼 필요도 없었다. 일하는 분들이 모두 미소 띤 얼굴이니 먹기만 해도 마음 편했다. 고운 한복 차려입은 모습도 아름답지만, 반찬 나누어주고 설거지하며 서로서로 돕는 모습들은 보기 좋다 못해 내게는 부러움이었다. 얼마 전 절 마당에서 눈여겨 봐두었던 너른 바위 위에 비빔밥 한 그릇 받아 들고 앉으니 다른 극락은 필요 없었다. 자비로운 부처님도 거기 계시고, 신도들을 가족같이 사랑하는 스님도 거기 계시고, 현덕사의 동참대중들은 모두 불보살이니, 동식물 영가들은 천도되어 홀연히 극락으로 오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절 마당에는 여름불교학교 안내하는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내가 현덕사를 좋아하고 주지스님을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마다 지방 어른들을 위해 열어드리는 경로잔치 때문이 아니라, 큰 절에서도 하기 어려운 어린이 포교 활동을 통해 불교의 미래를 생각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현덕사에서는 올해로 5회째 “어린이 여름 불교 학교”를 열고 있다. 방학 때가 되면 아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의 성경학교 꼬임을 이기느라 힘들어했었다. 우리 아이들도 거기에 대항할 자랑거리가 생긴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말이다. 주지스님은 요즘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에 바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박 3일간은 짧은 일정이지만 부처님 가까이 하기, 찬불가 익히기, 108배 등의 포교활동은 물론 만월산의 숲 탐방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어린이로 자라게 하고, 부처님이 계시는 절은 언제나 즐겁고 가고 싶은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노라고……. 벌써 80여명 넘게 신청했다고 한다. 억울한 동식물도 천도하시려는 스님은 그 아이들을 부처님 모시듯 할 것이다.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좋은 말씀 들려주시려고 「까막눈 삼디기」 같은 동화책도 아마 수없이 읽고 계실 것이다. 지금도 현덕사 뒷산에는 물봉선화와 까치수염이 별빛을 마시며 무더기로 피어 있을 테고, 하얀 박꽃 피는 맑은 도량을 내려다보며 오늘밤에도 어느 나뭇가지에선가 이름모를 새가 울고 있으리라. 뭇생명들이여, 현덕사를 기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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