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커피향과 현덕사, 템플스테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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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가영 | ||
등록일 | 2018년 05월 12일 (18:03) | 조회수 | 조회수 : 3,018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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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날 왜 절간에 와?” 방을 배정받으려 들어간 사무실에서 주지스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물으셨습니다.
화창한 주말에 템플스테이를 선택하게 된 건 심신이 무척 지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 반복되는 하루하루, 관계 속에서의 갈등..모든 사람이 살면서 겪는 일이겠지만, 오랜 시간을 끊임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이제 그만 멈추고 싶은 욕구만이 마음 속에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멈추기 위해 현덕사에 들렀습니다. ‘억지로라도 쉬어가라’는 벽에 걸려있던 글귀처럼요.
현덕사를 고른 까닭은 커피를 내린다는 후기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개원한 지 비교적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인지(유적지가 아니어서) 관광객의 발길은 뜸했습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 점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입구에서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아담한 절간의 풍경은 아직도 눈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절간 뒤로 보이는 산새. 초록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걸 뽐내듯 여러 빛깔의 나무들이 조화롭게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앞마당 이팝나무에는 꽃이 만발하였고 현덕이와 흰둥이는 처음 만난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운이(?) 좋았던지 스님께서 커피를 내리는 찻방 옆에 자리할 수 있었고 짐을 풀자마자 툇마루에 그저 앉아있었습니다. 이따금 뺨을 스치는 바람에 울리는 풍경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풀벌레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습니다. 저 멀리서부터 바람이 다가와 산고개를 넘어가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처음으로 느껴보았습니다.
옆방에 계시던 현종스님께서 저희를 부르시더니 제 집처럼 편하게 있다 가라며 이것 저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정말 짧게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인데, 이 분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아마 처음 뵌 스님의 얼굴에서, 말투에서, 말의 내용에서 삶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풍겨져 나온 것이 아닐까요. 따뜻하고 좋은 마음으로 삶을 살고 계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현종스님이 외출하시고 우리만 남아 불안한 마음에 주지스님께 다음 일정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 게 어딨냐며 목탁소리 들리면 저녁이나 먹으러 내려오라는 말씀 한 마디에 빡빡한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습니다. 말씀대로 그저 뒹굴고, 책을 읽고, 사발에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괜스레 바빠야만 하는 삶, 무엇이든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은 저만치 멀어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저녁 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리를 펴고, 예불독속경을 나누어 받고, 현종스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종교를 초월하여 그저 한 개인으로서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 불교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서툰 사람들이 다함께 스님을 따라 예불독속경을 읊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터라 의미도 모른 채 겨우 글자만 읽을 뿐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뒷사람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 보고, 스님의 목소리를 따라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둘러앉아 스님이 꼭 전하고 싶은 몇 가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겠지요. 말씀이 끝나고, (발우공양 다음으로 걱정되었던) 108배를 할 시간. 15분이면 할 수 있다며 독려하신 스님을 믿었지만, 15분이 지나도 108 대참회문은 끝나지 않았고..!! 30분 가까이 묵묵히 절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108배는 힘듦보다는 평온에 가까웠습니다. 여러 업보를 참회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108번의 절. 중간에 포기할 줄 알았는데 말씀에 귀기울이며 절하다 보니 어느새 108번을 채우게 되더군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템플스테이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스님과의 대화였습니다. 처음 해본 템플스테이였지만 아마도 현덕사만큼 스님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향 좋은 커피와 차를 손수 내려주시니 더할 나위 없는 조화로움이었습니다. 템플스테이에 오신 분들과 둘러앉아 같은 커피와 차향을 나누고, 대화로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차담을 하며 그저 더 내어주시고 싶어하시는 스님 곁에서 마치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이지만, 어느새 사회적으로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커지고 부모님께는 이제 의지하기보다 걱정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잘 모셔야겠다는 책임감이 커져가던 시기. 현종 스님과 함께 있으면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온 어린 손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희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셨고, 조언해주려고 마음써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갔던 친구와 현덕사에서의 하룻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뒷간 갈 적과 올 적 마음 다르다더니,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요. 수심과 번뇌에 축축히 젖은 채로 갔는데 돌아올 때는 햇볕에 잘 말린 빨래마냥 마음이 뽀송뽀송해졌습니다. :) 그리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랑이구나! 일주일이 지난 오늘도 스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온기를 느끼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새삼스럽지만 다시 깨닫고, 제가 받은 사랑을 주변에도 나누며 살고자 노력하려 합니다.
스님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벌써 보고싶네요. ㅠㅠ 날이 궂어서 하지 못했던 소금강 포행도, 요트투어(?)도 꼭 하고 싶어요. ^^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
현종 | 현종 | 18/05/13 12:37 두분 보살님 안녕하세요 돌아가신 삶의 헌장에서 잘 사시는듯 하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해준것은 별로인데 온통 좋은 얘기만 해 주시니 더 잘해 들릴것 하고 아쉬움이 큼니다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오시고 싶을때 언제든지 오세요. 항상 환영 입니다 | 18/05/13 1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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