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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칼럼] 현덕사의 고참 흰둥이

작성자현덕사
등록일2023년 04월 16일 (20:45)조회수조회수 : 981

우리 절에는 나 다음으로 흰둥이가 고참이다. 이십여 년 동안 같이 살았다. 사람으로 치면 흰둥이 나이는 백 살이다. 일곱 살 먹은 현덕이도 우리 절의 대중이다. 세 번째다. 흰둥이는 점잖은 시골 할아버지 느낌이라면 현덕이는 까칠한 아가씨 같다. 지난 늦가을에 모 방송국의 프로를 현덕사에서 촬영했다. 물론 방영도 되었다. 촬영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프로그램의 이름이 단짝이다.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소재다.

친밀한 단짝을 촬영하는데, 찍으면 찍을수록 단짝이 아닌 어긋한 모습만 연출되었다. 흰둥이나 현덕이는 나를 보면 피하고, 오라고 해도 꿈쩍도 안하고, 다가가면 매정하게 피하고, 달아나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촬영을 중단했다. 촬영 팀은 철수하여 계속 할지 말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추운 날씨에 밤낮으로 촬영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다시 심기일전하여 찍기로 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동물의 행동을 교정하는 분을 초대하여 그분 지도하에 관계 개선을 위한 교육 후, 강아지들의 행동이 달라진 것이다. 그전에는 쳐다만 봐도 슬슬 피했는데, 이제 간식을 주면 잘 받아먹기도 하고 만지고 안을 수도 있다. 심지어 내 방 앞에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스님을 부르기도 한다. 특히 현덕이가 더 애교를 부리고 예쁜 짓을 잘한다. 다른 사람 귀에는 ‘멍멍’ 소리로 들리겠지만 내 귀에는 ‘스님’으로 들린다.

흰둥이는 아주 어린 강아지 때 왔다. 하얀 털이 북실북실 참 귀엽고 예뻤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지금은 그 귀엽고 예뻤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틈만 나면 앉고 눕고 걸음걸이도 완전히 노인이다. 다리까지 약간 전다. 이별이 오래지 않아 다가올 듯하다. 이별 준비로 지난 가을 촬영 때 흰둥이의 장수 사진을 찍어 놓았다. 공양실에 떡하니 걸려 있다.

이십여 년 동안 흰둥이에 대한 추억이 참 많다. 그때는 나도 사오십 살 때였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산행을 하였다. 흰둥이는 그 짧은 다리로 온 산을 따라 다녔다. 흰둥이보다 먼저 온 검둥이가 있었다. 검둥이는 아주 신사 같은 개였다. 절에 온 손님들을 반가이 맞아 안내도 하였고 갈 때는 절 입구 버스 타는 데까지 배웅도 해주었다. 특히 먹을 때도 점잖았다. 흰둥이가 강아지 때 식탐이 많았다. 검둥이는 먹을 때 항상 흰둥이한테 먼저 먹도록 양보했다. 그렇게 식탐이 많던 흰둥이도 현덕이가 처음 왔을 때 양보하고 도와주었다. 예전에 보고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인생사 견생사가 다 그러하듯이 좋은 추억만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날 포행 길에 흰둥이가 이웃집 큰개에게 물려 사경을 헤매어 병원에 입원도 했다. 다행이 치료가 잘 되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나이 들면서 슬개골이 탈골되어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수술비도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픈 것을 뻔히 아는데 치료를 그만둘 수 없었다. 그때 수술 후유증으로 다리를 약간 절게 되었다.

현덕사까지 매일 산책하는 사람들 중에 한 보살님이 있었다. 그런데 흰둥이가 그 분의 다리를 물어 버렸다. 흰둥이 마음에 쌓였던 응어리가 있었나보다. 그 보살님이 검둥이만 편애하고 흰둥이를 싫어했다. 그것이 서운해서였을까. 동물들도 사람하고 똑 같다. 희로애락을 느낀다. 좋은 일에는 기뻐할 줄 알고 안 좋은 일에는 슬퍼할 줄 안다. 좋으면 이리저리 날뛰며 즐거워 할 줄도 알고, 기분이 나쁘면 삐쳐 토라질 줄도 안다. 영락없는 사람의 마음이고 행동이다.

흰둥이는 유기견 센터에서 데리고 왔다. 강아지 때부터 사람의 손길을 질겁하고 피했다. 안타까웠다. 현덕사 오기 전 누군가에게 학대를 많이 받은 듯했다. 오랜 기간 동안 절의 보살님들과 특히 비구니 스님이 진심을 다해 흰둥이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흰둥이의 마음이 차차 열렸나보다. 지금은 모든 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다 고귀하고 소중하다. 생명에는 귀하고 덜 귀한 게 없다. 어떤 생명이든 존중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 절의 터줏대감인 흰둥이와 현덕이도 당당한 현덕사의 오부대중이고 주인이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www.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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