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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의 장수 사진

작성자현종
등록일2023년 05월 30일 (10:30)조회수조회수 : 708
흰둥이의 장수 사진

우리 현덕사 대웅전 영단에, 강아지 영정 사진 네 개가 놓여 있다. 사람들 영정과 함께, 들어 온 순서대로. 위패에 이름도 당당히 쓰여 있다. 망 애견 시츄 김송 영가. 망 애견 말티즈 자비 영가. 망 애견 말티즈 토리 영가 등등이다. 극락전 영가등에도 반려견이나 반려묘의 영가등이 많이 달려 있다. 이렇게 죽은 다음에도 못 잊어 영가등을 달거나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기도 한다. 합천 제비 영가를 시작으로 많은 동식물 천도제를 하였다.
반려동물과 맺었던 반려인의 인연을 들어 보면, 구구절절 애달프고 감동적이다. 처음에는 강아지가 불쌍하고 측은해서 키웠는데, 어느 때부터 강아지에게 위로 받고 도움 받더라고 했다. 나도 현덕사에서 흰둥이, 현덕이와 같이 살고 있다. 내게는 그 아이들이 변치 않는 가족이다. 누구처럼 서운하게 했다고 삐치거나 떠나, 안 오고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현덕사는 사람들 사십구재나 천도제보다 반려견이나 반려묘의 재가 더 많다. 가끔씩 스님들이 물어 본다. 동물의 영단 차림을 어떻게 하느냐고. 사람들과 똑 같이 차린다. 떡을 하고 과일도 올리고 나물도 전도 부쳐 올린다. 사람들 상차림보다 한두 가지가 더 올라 간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을 더 올리기 때문이다. 염불도 똑같이 한다.
현덕사에서 동식물 천도제를 시작한 동기는 출가 전의 나의 잘못된 살생을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 어느 여름날 집 마당 빨랫줄에 앉은 새끼 제비를 막대기로 때려 죽였다. 툭 떨어져 파닥거리며 죽는 것을 본 것이 내게 큰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그 마음으로 사람들 위패 붙이는데 같이 붙여 놓고 제를 올렸다. 현덕사 개원을 한 해에 칠월백중 기도를 하면서 영단 위패에 망 합천제비 영가라고 써서. 처음에는 신도들의 반발이 많았고 비난도 많았다. 어떻게 제비 위패를 우리 조상 위패하고 같이 모시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시 하고 있다. 그러던 사람들이 자기가 키우던 개가 죽으니 사십구재를 지내 달라고 할 정도로.
현덕사 공양실 벽에 내 사진은 없는데 우리 흰둥이의 사진은 떡하니 걸려 있다. 지난가을에 ‘단짝’이라는 방송 촬영을 하면서 방송용으로 흰둥이의 영정사진이 아닌 장수 사진을 찍어 걸어 둔 것이다. 언젠가 흰둥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에 영정 사진으로 쓰기 위해서다. 현덕사에서 나하고 20여년을 같이 산 흰둥이.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았고 신도로 다녔지만 많이 이 세상에서 떠났다.
하지만 흰둥이는 지금도 여전히 내 곁에 있다. 포행을 가면 다리를 절어 뒤뚱 거리면서 따라 다닌다. 이제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따라오지 못하게 한다. 흰둥이가 인연이 다해 이 세상을 떠나면 정성껏 장례를 치르고 사십구재도 잘 지내주련다. 반려묘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하나의 자비심이 더 있다고 본다. 동물들에게 사랑을 주듯, 사람들에게도 그럴 테니까. 재를 지내다 보면 강아지 재를 지낼 때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제 반려 동물도 가족인 셈이다.
현덕사 개산하고 합천 제비영가 위폐를 모신 후, 해마다 가을이면 동식물 천도제를 지내고 있다. 그때는 전국에서 반려인들이 많이들 동참하여 같이 지낸다. 생명에는 차별이 없다. 어떤 생명이든 소중하고 귀하다. 동물들이 우리 인간하고 모습만 다를 뿐이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은 마음은 사람하고 똑 같을 것이다. 특히 스님들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면 수행에 크게 도움이 된다. 그들에게 대자비심과 절대적인 사랑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강릉 현덕사 현종 씀.

해인동문회보 제 212 호
2023년 6 월 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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