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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기행- 현덕사

작성자김종수
등록일2010년 10월 17일 (20:42)조회수조회수 : 3,578
난생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
어디로 갈까나, 무작정 정처없이 떠나고 싶었지만, 그래도
목적지는 정해놓고 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40여년 세월을 같이 지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는 거의 공황상태에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지내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아...들!...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으시면서 한줄기 진한 '눈물'을 뿌리셨다.
임종 시에 남긴 이 두가지 화두, "아들....그리고 눈물" 그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불가에서 화두를 참구하면서 수행하듯이
나에게 어머니가 던져 놓고 가신 이 두 가지 화두는
내 머리속을 복잡하게 하고 내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2년 전 롯데호텔에서 점심을 같이 한 스님이 계셨다.
그 스님은 나를 처음 보았는데도 자신이 차고 있던 염주와 출가 때 부터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던 손 때 묻은 발원문 종이를 내게 건네 주었다.

그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직감으로 무척 소중한 것을 내가 받았다는 느낌에
묘한 인연 같은 것을 강하게 받았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 스님이 생각났지만 바쁜 일과에 묻혀 시간이 지나갔다.

난생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
불효로 인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회한
그로인해 가슴찟어지는 고통과 번뇌

어머니를 이제는 편하게 보내 드려야 할 것 같아
나는 이별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여행지를 강릉으로 정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스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3시간 버스를 타고 강릉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강릉은 두 번째 방문,
연곡리 현덕사를 물으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농익은 홍시처럼 발그레할 무렵
드디어 만불산 현덕사에 도착하였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현덕사는 사이버에서 본 그대로 정겹게 다가왔다.

진돗개와 털털이 강아지가 낯설지 않게 반겨주고
오랜 지기 처럼 해맑게 반기는 행자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아늑한 산사엔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새악시 볼 처럼 농익은 감나무랑 대웅전 뜨락에 하늘 거리는 코스모스와 봉숭아
영락없는 어릴적 고향, 바로 그 분위기였다.

주지 스님은 밭에 일하러 나가셨단다.
나는 산사의 분위기에 취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최근에 새로 단청을 한 대웅전은 오색 색동옷 입은 각시처럼 오히려 편하고 정다워보였다.

불타의 출생부터 열반까지의 팔정도가 벽화에 그려져 있고
처마에 뎅그러니 달려있는 풍경은 고향 집 싸립문의 문고리 같았다.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편안하게 가람을 조성하였을까?
주지스님 마음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2년만의 해우. 현종스님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는 여전하였다.
깨끗한 선방에 여장을 푸니 심신이 노긋노긋 편안해졌다.
누이 같이 곱고 여린 심성을 가진 행자님과 다라니경을 외우다보니
어느 새 산사의 가을 밤은 깊어져갔다.

새벽 5시에 부처님 전에 예배를 올리면서 108배롤 하였다.
이 자식의 불효로 가슴 아프게 떠나신 어머니가 평안과 극락왕생을
하도록 빌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새벽 밥을 평생 지으셨고 자신은 설익은 찬밥을 드셨으며
겨울엔 방 아랫목에 자식에게 줄 밥을 덥고 식을까봐 걱정하셨고
평생 솥을 긁어 누룽지를 드시면서도 아들이 '엄마는 왜 맨날 누룽지만 먹어?'라고 물으면
"응, 엄만 누룽지가 맛있어" 그렇게 자신의 살점을 떼어 먹였던 어머니,

이 무심한 아들의 불효를 어머닌 용서하실까?

돌아가시기 이틀 전 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마침 점심 때가 되니 산소 호흡기에 헉..헉 숨을 힘들게 몰아쉬고 있는
어머니는 평생 그러했듯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밥..밥' 하셨다
"아들아..배고프겠다. 점심 먹어야지" 그 말씀을 하신 것이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자식을 걱정하면서 가신 어머니...

현종 스님께서 법문을 내리셨다.
<자식이 너무 슬퍼하면 어머니는 가슴이 아파 뒤돌아 보느라 떠날 수가 없다.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저승에서 어머니가 선처를 받고 극락에 왕생할 수 있으며,
어머니의 가없는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어머니 처럼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다.>

어머니를 편하게 보내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
그래, 이제 이 자식을 위해 더이상 걱정 안해도 되고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다. 저 세상에 가셔서 이 아들이 걸어가는 길 이 아들이 살아가는 것을
굳건히 지켜봐 달라고...어머니 편안히 가세요..나는 부처님께 어머니의 인도를 부탁드렸다.

기도를 하고 일어나니 어느 덧 아침 햇살이 청아하게 산사에 와 기다리고 있었다.
햇살 너머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옥비녀를 꼽은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회향하는 길, 굳이 강릉터미널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스님의 말씀을 거절할 수 없어 동승했더니
아..글쌔, 주문진에 들러 오징어를 사고 차표까지 끊어 내미는 게 아닌가.
이런 이런...인연이로다!!

나의 생애 첫 홀로 여행은
이렇게 스님과의 인연에 따라
가을, 현덕사에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글었다.
코멘트현황
김종수
김종수 | 10/10/17 20:51
현종 스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맑고 순수한 우리 행자님, 부디 훌륭한 불제자 되시어 성불하시길 바랍니다. 뵙지 못하고 와 아쉬움이 큰 현성스님, 내년에 다시 갈께요 ^^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10/10/17 20:51
조윤민
조윤민 | 10/10/17 23:31
가슴이 먹먹해지네요....나무관세음보살....
10/10/17 23:31
카타리나
카타리나 | 10/10/18 14:42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드립니다.어머님들은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아다고하지요.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시는것은 애착과 집착을 놓아 버리시고 식구들과 이웃에 받은 사랑을 배불며 행복하고 화목하게 살아가시는 것이아니겠읍니까?
10/10/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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