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강릉은 언젠가부터 커피의 도시가 된 듯하다. 언뜻 생각하면 문명의 때를 덜 입은 강원도의 깊은 산과 도시 문화를 대표하는 커피는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금 커피는 강릉을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재작년부터는 강릉에서 커피 축제까지 열리고 있다.

커피와 차는 수행자와 인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강릉은 커피를 즐기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경관 좋은 바다와 산, 그리고 풍류를 즐기는 오랜 문화가 서양에서 들어온 그윽한 커피향을 만났으니, 이보다 좋은 궁합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렇다 해도, 서양의 커피와 지극히 동양적인 사찰을 연결하긴 쉽지 않다. 스님들은 수행하는 과정에서 차를 마신다. 스님들이 차를 마시는 이유는 수행 중에 정신을 맑게 하고, 잠시 마음을 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양에서 찻잔을 기울일 때 서양의 수행자들은 우리 스님네들이 차를 즐기듯 커피를 즐긴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산사와 커피의 관계가 실상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것이다. 커피와 차는 모두 수행자의 곁을 지키는 고마운 음료인 것이다.

예전에 나는 커피를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산사를 찾은 신도들이 커피를 좋아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커피향도 나눠 마시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원두커피를 접하게 된 후, 나는 그만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우선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 커피를 마시면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긴 시간의 토론도 피곤한 줄 모르게 된다.

배우고 정진하는 수행자로서 참으로 고마운 음료가 아닐 수 없다. 또 커피가 주는 즐거움은 어떤가. 커피는 부드러운 쓴맛과 신맛, 그리고 커피 고유의 매혹적인 향 등 기분 좋은 친구같이 은근한 멋이 있다. 이 정도면 산사의 커피향이 반가울 만도 하지 않은가.

올 여름 강릉은 유난히도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현덕사에서는 여름비 내리는 날 불자들을 초대해 갖가지 커피를 내려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우리는 커피를 마시기 전에 ‘하와이안 코나’라는 귀한 커피를 부처님께 공양했다. 정성들여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그윽한 향기가 먼저 대웅전을 가득 채웠다. 아마도 커피를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은 우리 현덕사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이날 현덕사 경내에는 비안개가 자욱해서 커피향내가 더욱 진하게 퍼져 나갔고, 커피 맛 또한 더욱 깊었다. 이렇게 산사에서 다양한 커피를 마시며 신도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모두들 그윽한 커피 향에 취해 어느 때 보다 더욱 진솔하고 격의 없는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다완을 감싸고 마시는 운치

현덕사의 커피 자리에는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현덕사에서는 커피를 커피잔이 아닌 전통 다완에 마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손으로 다완을 감싸고 마시는 것이 서양식 커피잔으로 홀짝이는 것 보다 커피 맛을 더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런 ‘현덕사식 커피 마시기’를 접하면 처음에는 어색해 하다가도 곧 그 맛의 차이를 느끼고는 어느새 자연스레 다완에 마시는 커피를 즐기게 된다.

앞으로도 현덕사에 오시는 불자들에게 우리의 전통차는 물론이고, 세상에서 가장 품질좋은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 이유는 하나다. 신도들과 격의 없이 편하게 소통하고 싶어서다.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나누기 위해서라면 전통차면 어떻고, 또 커피라면 어떤가.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지는 가을이 오고 있다.

[불교신문 2749호/ 9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