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시 살아난 보리수 한그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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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들꽃향기 | ||
등록일 | 2011년 11월 15일 (20:40) | 조회수 | 조회수 : 3,181 |
칼럼 다시 살아난 보리수 한그루 데스크승인 2011.11.15 10:55:25 현종스님 | 논설위원.강릉 현덕사 주지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여러 나무 중에서 불교를 대표하는 나무를 꼽는다면 바로 보리수(菩提樹)다. 특히 붓다가야 대보리사 대탑 옆에 있는 보리수는 불교도라면 누구나 한번쯤 참배하고자 하는 성스런 나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싯다르타가 이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불자들이 보리수에 주목하는 이유는 부처님과 관련해서다. 부처님 입적 이후 1세기경 불상이 탄생되기 전까지, 보리수는 법륜, 불족적 등과 함께 부처님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간주됐다. 산치대탑 조각이나 부처님 일생을 새긴 작품 등에는 부처님이 있어야 될 자리에 보리수가 서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리수는 바로 부처님을, 아니 깨달음을 대신했던 것이다. 지금도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수행하며, 보리수 잎을 모시는 신도들이 많다. 보리수나무를 현덕사에 심어 신도들에게 휴식과 마음의 안식처를 마련하고자 묘목을 어렵게 구해 여러 차례 경내 주변에 심었다. 그런데 보리수나무는 내 마음처럼 잘 자라주지 못했다. 강릉의 기후적 특성 때문인지 다들 겨울을 못버티고 고사해버리는 것이다. 한번은 도반 스님께서 키우던 보리수나무 묘목을 한그루 얻어와 화분에 심어 방에서 난 키우듯 정성을 쏟아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잘 자라는 듯 보였으나 어떠한 연유에선지 잎이 한잎 두잎 떨어지더니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보리수나무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아 화분에서 뽑아내어 절 뒤뜰에 버렸다. 그러고 몇 달이 지난 후 이른 아침에 우연히 그 곳을 지나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잘 자라고 있는 보리수나무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지 순례길에 유심히 보았던 틀림없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잎이였다. 몇 달전 고사해서 버려버린 바로 그 보리수나무였던 것이다. 마치 그 나무는 자신을 방치해버린 나를 원망하듯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다 이해한다는 듯 포근한 미소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내가 따뜻한 곳에서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며 키울 때는 잎이 말라 죽어가더니 뒤뜰에 아무렇게나 버린 장소에서는 어찌 이렇게 잘 자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시간을 두고 그 신비스러운 보리수나무 한그루를 바라보며 나는 많을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이 나무는 내가 정성을 다해 키운 따뜻한 방 한구석이 자기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햇볕이 들고 산들바람이 부는 뒤뜰 한 켠이 자기자리였다. 내 어리석은 욕심으로 그간 여러 그루의 보리수나무를 죽인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도 하게 되고 반성도 하게 된다. 이 보리수 한 그루를 통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는 아주 사소한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 또한 지금의 내 자리가 과연 내가 있어야할 자리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하게 된다. 우리는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배우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내 생각만으로 여기 저기 보리수나무를 심어 숲이 우거지길 바라는 욕심만 가득했지 나무의 입장에서 그 생명의 소중함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다시 살아난 보리수나무 한그루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불교신문 2765호/ 11월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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