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 24~26일 현덕사 템플 스테이를 마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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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주현 | ||
등록일 | 2013년 07월 29일 (09:08) | 조회수 | 조회수 : 5,301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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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큰 딸아이와 함께 삼척을 거쳐 강릉 현덕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하고 춘천까지 들르는 4박 5일간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경춘 고속도로 남양주 톨게이트를 지나며 들어선 서울...
지난 며칠간 보고 즐긴 그림들과는 너무나 다른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집으로 가기 위해 종합 운동장을 지나 삼성동을 지날 때는 낯선 느낌마저 들었다.
45년을 산 서울의 모습이 고작 며칠을 지내고 온 강원도 산천의 모습보다 더 낯설게 다가온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 까닭일까?
찾아 간 자연은 그리도 반갑더니 돌아온 서울은 너무도 낯설다.
집에 들어와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춘천에서 얻어 온 옥수수를 삶고는 여행 떠나기 전 남겨 두었던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는다.
내가 예뻐하는 베란다 밖에 서있는 소나무 세 그루를 쳐다보면서.
평소같으면 아주 행복했을 일,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에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
그러나 어느새 나는 현덕사가 있는 만월산의 소나무들과 현종 스님과의 포행 후 현덕사 마당에 서서 먹던 수박의 꿀맛이
생각나 벌써부터 추억에 젖는다.
고등학교 1학년인 딸 정연이와 함께 의미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 선택한 템플 스테이.
따라올까 싶어 슬그머니 건넨 나의 물음에 역시나 시큰둥한 딸아이의 첫 반응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정연이는 내게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커다랗고 유명한 절 말고 외딴 곳의 작은 절이 어떻겠느냐며 TV
에서 보았다는 현덕사를 추천했다.
나는 내심 마음에 담아 둔 절이 있었지만 흔쾌히 딸의 의견에 동의하며 현덕사에 템플 스테이를 신청했다.
삼척에서 일박을 하고 정연이에게 절에 들어가면 먹지 못할 고기도 배불리 먹인 뒤 찾아간 현덕사.
길눈이 어두운 우리 부부로서는 한참을 헤매었을 길을 유능한 네비게이션 덕분에 우리 가족은 일찌감치 현덕사 마당에
들어섰다.
예정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멋쩍어하는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 주신 사무장님과 보살님.
그 따뜻한 마음은 알고 보니 현종 스님을 비롯해 현덕사에 계신 모든 분들의 한결같은 특성이었다.
맛있는 커피 한 잔과 함께 경내를 둘러보며 특히나 개를 좋아하는 정연이는 보리와 깜돌이를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가운데 우리와 함께 지낼 분들이 속속 도착하셨다.
서로 서먹한 가운데 사무장님의 일정 안내와 기본 예절 설명을 들으며 템플 스테이는 시작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맛있는 저녁 공양을 하고 나서 저녁 예불을 올렸다.
동림 스님(사실 스님의 법명은 그때는 몰랐었다.스님,죄송해요.^^;;;)의 씩씩하고 낭랑하신 염불 소리에 나의 보잘 것
없는 목청을 보태어 첫 저녁 예불을 드렸다.
이어지는 염주 만들기,한 가지 염원을 담으라는 스님 말씀에 나도 마음 속 염원을 담아 열심히 염주 알을 꿰었다.
하지만...마지막 매듭 만들 때에는 마음처럼 되지 않아 씨름하느라 마음 속 염원은 어디로 가버리고 토끼 귀 만드는 데에
만 정신이 팔리기는 했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방사로 들어가는 길,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대충 씻은 후 자리를 펴고 모두들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할 때였다.
"달 봤나?" 현종 스님의 참 짧기도 한 한마디 말씀에 열린 문을 내다 보았다.
'올라오면서 별만 보고 올라왔는데...'
하늘을 보니 보름이 지났건만 아직도 차오른 달이 참 밝기도 하다.
"와!" 절로 탄성이 나와 한참을 감상에 젖었다.
시원한 바람 소리와 풍경 소리 가득한 현덕사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고 잠이 오지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던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인기척과 목탁 소리에 잠이 깨어 아침 예불을 올리러 법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부족한 수면에도 불구하고 상쾌하기만
하다.
아침 예불 후 현종 스님의 말씀 중에 "달빛같은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108배를 하였다.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도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지만 왠지 모를 울컥함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온다.
전날 다섯시 반 저녁 공양 이후 일곱 시에나 먹게 된 아침 공양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우리 세 식구 중 엄마가 제일 많이 먹는다며 정연이가 계속해서 타박을 주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생각해도 2박
3일 내내 나는 정말 잘도 먹었다.
처음 현덕사에 들어섰을 때 법당 뒤 소나무 숲에 눈길이 닿았었는데 아침 공양 후 포행을 하며 멋진 소나무들을 정말 많
이 보았다.간간이 이어지는 현종 스님의 좋은 말씀과 자연에 대한 스님의 사랑도 들으며...
땀을 흘리며 포행에서 돌아오니 보살님들께서 시원한 수박과 구수한 옥수수를 내주셨다.
시간이 되어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오고...
새로운 분들과 또 함께 한다.
저녁 예불 후 가진 탁본 작업 시간.
"참 좋은 인연입니다." 가슴이 따뜻해 오는 참 아름다운 말씀이다.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나중에는 사무장님까지 나서서 우리 가족을 도와 주셨지만 훌륭한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만족했고 함께 한 분들과 연잎차를 마시며 담소한 시간은 행복했었다.
현덕사에서의 마지막 밤,벌써 하룻밤을 함께 잔 지연씨와 새로 온 보살님과 밤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 밤도 조금은 기울어진 달과 바람 소리,풍경 소리가 함께 해주었다.
조금은 익숙해진 아침 예불과 참선,그리고 108배.
현종 스님 말씀에 새삼 부모님 은혜를 되새기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친다.
시간이 되어 내가 갈 사람이 되었다.
기나긴 인생 길에 늘 있는 만남과 헤어짐 이건만 만남은 언제나 설레고 헤어짐은 언제나 적응이 되질 않는다.
알고 보니 종교도 같고 집도 가까운 벌써 두 밤을 함께 지낸 지연씨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오다가다 만난 인연은 여기까지라 생각해야지 다짐했지만 만날 인연은 신기하게 만난다는 스님 말씀에 못내 아쉬움이
밀려 온다.
꼭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지연씨 말에 우리는 결국 전화번호를 나누고 악수도 모자라 서로 한번 안아주고 나서야 손을
흔든다.
점심 공양 후 수련복을 갈아 입고 짐을 챙겨 내려왔다.
이제는 우리 가족이 떠나야 할 차례...
현덕사에 들르는 모든 이들을 언제나 소중한 사람,참 좋은 인연으로 맞아 주시는 스님이 아니어도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
지지 않는다.
만월산의 소나무 숲과 법당 처마의 풍경 소리.산사에서 마시던 향 가득한 커피,새침떼기 보리와 귀염둥이 깜돌이,난생
처음 산에서 만난 새끼 살모사,파아란 하늘에 걸린 흰 구름과 까만 밤을 밝혀 주는 환한 달빛,오랜만에 보는 제비집도...
어느 것 하나 두고 올 수 없어 오래도록 가슴에 새겨 넣는다.
108배를 하는 동안 내려놓은 나의 마음 한 조각도 현덕사 어딘가에 흘려놓고 돌아선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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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사 | 현덕사 | 13/07/30 02:43 모든 아이들이 강아지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유독 보리에게 애정를 구걸하든 아이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 계절이 바뀌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현덕사를 보러 다시 오십시요. _()_ | 13/07/30 0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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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 이주현 13/07/30 14:59 정연이가 강아지 좋아하는건 도무지 말릴 수가 없답니다.^^;; 정연이랑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현덕사에서 지낸 이야기 많이 하고 있어요. 계절이 바뀌면 정연이 동생도 데리고 꼭 다시 찾아 뵐께요. 여행은 늘 우리에게 활력을 주지만 이번엔 특히나 저희 세 식구 가슴 속에 보물 하나씩 담고 온 여행이라 더욱 특별하답니다. 저희 가족에게 주신 좋은 선물,잊지 않고 다시 찾아 뵐때까지 건강하시길 염원합니다.^^ | 13/07/30 1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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