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스님 / 논설위원·강릉 불교환경연대 대표
새해 벽두부터 참혹한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2일 카리브 해 히스파니올라 섬에 있는 아이티에 진도 7.2 규모의 강진이 발생해, 35만 명의 사상자와 150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묻혀 있는지 정확한 집계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참사로 부모를 잃은 고아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이티 인들이 고국을 탈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산사까지 들려왔다.
TV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참혹한 뉴스를 들으면서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다. “자비하신 부처님, 가난한 나라 아이티인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부디 세상을 떠난 영가들은 극락왕생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용기를 잃지 말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이다.
모든 차별 넘어선 손길
최근 몇 년 새 지구촌에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이 잇따라 발생했다.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미얀마의 나르기스, 일본 고베와 중국 쓰촨성 대지진 등 ‘강력한 자연재해’ 앞에 우리 인간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상처도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터진 아이티 참사는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고 위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나라와 인종을 뛰어넘은 지구인들의 구호 손길이 아이티에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념과 종교도, 잘 살고 못사는 빈부의 격차도, 생명의 존엄 앞에선 그 어떤 차별도 발견할 수 없다. 모든 차이와 차별을 넘어선 자비의 손길은 지구촌이었다.
우리 한국 역시 아이티 구호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종단 역시 아이티 대지진 발생 직후 애도문을 발표한 것은 물론 총무원과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이 앞장서 자비행을 펼치고 있다. 총무원에서는 긴급구호자금 5만 불을 내 놓았고, 추후 더 많은 구호금을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종단은 전국 본말사와 불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지구촌공생회와 로터스월드 등 불교계의 국제구호단체들도 발 벗고 나섰다.
부처님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인드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마치 그물처럼 얼기설기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이 세상이고, 모든 일은 연기(緣起)되어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이다. 비록 대재앙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우리는 아니지만, 결국 아이티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명인 것이다.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구경>에는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 무한한 자비심을 내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생면부지의 아이티인들이지만, 나의 가족과 친구가 생명과 재산을 잃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 불자의 도리이다.
종단차원 자리 마련을
아이티 구호에 적극 나서고 있는 종단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최우선 과제는 아이티인을 돕는 모금운동이지만, 어느 정도 현지 상황이 정리되고 난후 귀국하는 한국인 구호대원과 의료진 등을 격려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한다. 119 구호대원, 간호사, 의료진, 그리고 언론인 등 목숨을 걸고 아이티인 구호활동에 나섰던 이들을 종단 차원에서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한다면 이들이 더욱 보람을 느낄 것이며, 이후 아이티와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더욱 흔쾌한 마음으로 구호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대지진 참사로 피해를 입은 아이티인들이 용기를 갖고 난관을 극복하길 기원한다.
[불교신문 2595호/ 2월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