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오래전부터 잘 아는 불교계 언론의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 약사가 있는데 쥐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위령제를 지내주고 싶어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동식물 천도재’를 비롯해 수많은 동물의 천도재를 지냈지만 쥐 천도재는 처음이라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를 지낼 재주와 통화를 했는데 당연히 지내줘야만 하는 이유를 들었다. 학교 실험실에서 실험을 함께 했던 선후배 10명이 뜻을 모아 위령재를 지내기로 했단다.
옛날에 내가 생각했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어렸을 때 그냥 장난으로 빨랫줄에 줄줄이 앉아 있는 제비를 죽였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장난으로 죽인 것이다.
그때 죽인 새끼 제비가 항상 마음에 걸려 있었다. 봄에 제비가 와서 지지배배 하고 날아다니면 그때 죽인 제비가 생각나서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고 잘못한 게 내 마음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 전화를 받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아니면 실수로 많은 생명을 해치고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로 인해 죽어간 생명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의 연구실험실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실험중에 죽어 가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 쥐를 제일 많이 이용 한단다. 결국 아무 죄도 없는 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었고 죽어가고 있다. 실험이 끝나고 쥐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쥐를 살려두지 않고 그냥 죽인단다.
부처님의 계율 중에서 제일 첫 번째로 치는 게 불살생계이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이치를 다 아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분명 옳은 말씀이고 진리다.
억울하게 죽어간 쥐들을 위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 인간하고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 온 동물이 쥐다. 물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맨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쥐의 신세이다. 모르긴 해도 쥐가 있어 이 지구 생태계에 이로운 점도 있을 것이다.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위해 실험용으로 제일 많이 죽어 가는 것이 쥐이다. 쥐도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 갈 권리가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죽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오직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 실험실에서 죽어간 쥐들도 오래 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들의 세계에서도 가족이 있을 것이다. 부모형제 친구 이웃들도 있다. 가슴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고 희로애락을 한다. 기쁨과 슬픔을 알고 그리고 분노도 할 줄 안다.
그런 쥐들을 위한 위패를 어떻게 써야 될지 고민하고 있는데 서울에 사는 불자 가족이 동해안 여행 중에 현덕사의 사발 커피향에 이끌려 방문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 중에 같이 온 딸이 미술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인사를 했다. 쥐 위패를 쓰던지 그려야 하는데 좀 도와 달랬더니 흔쾌히 그려 보내 주었다. 지금까지 지냈던 천도재 위패 중에 단연 최고의 위패를 모셨다. ‘망 애혼 쥐 영가’ 라고 쓰고 아래에는 미술대학생 답게 반야용선을 타고 있는 쥐들을 아주 예쁘게 그려 주었다.
위패가 아주 훌륭한 작품이었다. 재를 다 지내고 소지를 하면서 갈등을 했다. 소각을 하긴 해야 하는데 그냥 태워 버리기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깨끗하게 보내 주자는 의미로 불살라 주었다.
12월7일 현덕사 대웅전에서 쥐 천도재를 지낸 재주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 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천도재를 지낸 느낌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쥐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운 마음을 다는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어낸 듯하다고 했다.
다가오는 새해는 쥐띠의 해이다. 쥐는 사람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 했고 우리 설화나 민담에도 많이 등장한다. 어럽게 살지만 쥐에게도 먹을 것을 나눠준 집주인에게 집이 무너질 것을 안 쥐가 마당에서 이상한 행동을 보여 집안 식구들이 밖으로 나오게 해서 화를 면하게 했다는 얘기도 있다.
쥐는 보은의 동물이도 하다. 쥐는 근면성실하고 특히 다산의 동물이다. 지금 이 시대는 인구 절감으로 인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구가 많아야 대국이 될 수 있다. 쥐띠 새해에는 대한민국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쥐의 해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