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산 이야기

게시물열람
제목

잡초와의 전쟁

작성자현종
등록일2022년 09월 06일 (13:12)조회수조회수 : 1,083
현덕사는 마당이 넓은 편이다. 작은 주차장이 두 군데나 있고,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길게 채소밭도 있다. 본래 계절 따라 피는 온갖 꽃들을 심고 가꾸어, 쉼 없이 찾아드는 벌과 나비를 볼 수 있는 꽃밭이었다. 그 꽃밭이 몇 년 전부터 상추나 시금치 등을 심는 채소밭으로 변했다.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 토란, 방아, 고수, 오이, 수박 등 온갖 채소들을 화초처럼 심어 키운다. 유일하게 식용이 아닌 화초로 키우는 게 있다. 바로 목화다. 하기야 목화도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덜 여문 목화열매를 다래라 한다. 달짝지근한 게 맛이 있다. 예전에 먹을 것이 귀할 때 아이들이 어른들 눈을 피해 많이 따 먹기도 했다.

지금 한창 목화꽃이 피고 져서 다래가 달리고 있다. 해마다 목화를 많이 심었는데 올해는 조금만 심었다. 목화꽃은 필 때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아주 예쁜 핑크색으로 진다. 지난 여름에 상추가 비싸 ‘금상추’로 불렸다. 현덕사에서는 제일 흔하게 먹은 채소가 바로 그 금상추였다. 주기적으로 간격을 두어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어 키웠다. 상추쌈과 방울토마토를 실컷 따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여름 내내 잡초와의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여름은 잡초와의 전쟁이다. 시골 사는 사람들의 숙명 같은 일상, 우리 현덕사도 봄부터 지금까지 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채소밭이나 꽃밭 그리고 마당에 난 잡초를 뽑고 뽑아도 또 올라오고, 베고 또 베어도 쑥쑥 자란다. 잡초의 생명력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마당에 자갈을 깔아 놓으면 풀이 안 나고, 나도 덜 자란다고 해서 많은 돈을 들여 깔아 놨는데, 당장은 덜한 것 같아도 올라올 잡초는 다 나오는 듯 했다. 현덕사에서는 아무리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흰둥이와 현덕이가 마당에서 뛰놀며 뒹굴고, 심지어 고인 빗물까지 마시기 때문이다. 벌겋게 풀들이 말라 죽어가는 모습 또한 보기 싫다.

어느 글에서 제초제를 뿌리면 흙도 죽는다는 걸 읽었다. 충격적이었다. 사실 잡초도 한 생명이며, 이름을 가진 한 포기 들꽃이고 들풀이다. 현덕사 주위에서 자라는 풀 중에 먼저 뽑는 게 한삼덩굴과 며느리밑씻개이다. 그러다보니 며느리밑씻개는 얼추 잡힌 듯하다. 줄기에 가시가 있어 아주 성가신 잡초다. 한삼덩굴도 자라는 속도가 빨라 세력을 확장하는 게 무서울 정도다. 보이는 것은 웬만큼 다 뽑았다. 보이지만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언덕 아래에 태어나 자라는 것은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마당이나 논밭에서 태어나면 잡초라 불리고 제거의 대상이 되는 풀들이다.

그 풀들도 산과 강가에 태어났다면 길 가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찬 받았을지 모른다. 자운영, 찔레꽃, 민들레, 애기똥풀, 은방울꽃, 마타리, 물봉선 등등 예쁜 이름을 가진 들꽃처럼 살아 갈 수도 있었을 거다. 어디에 태어나 사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본디 그들이 이 땅의 주인들이다. 인간들이 길을 내고 집을 짓고 논밭을 만들어 잡풀이라고 이름 붙여 억울하게 쫓겨난 것이다. 풀을 베거나 뽑으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들풀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꼭 좋은 곳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살라며 축원해준다.

산에 사는 사람들을 제일 괴롭히는 게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칡넝쿨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현덕사도 예외는 아니다. 바로 칡넝쿨이 온 밭과 마당 그리고 길에 쳐들어온다. 인정사정없이 막무가내로 걸리는 대로 감아 타고 넘어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진지를 만든다. 마치 점령군처럼 무서운 속도로 밀물처럼 밀려온다. 무성한 크고 넓은 잎으로 완전 장악해 버린다. 뭐든지 닥치는 대로 칭칭 감아 덮어 버리기 때문에 나무에게 고통을 준다. 그래도 산행 길에 칡꽃향기를 만나면 무척이나 달콤한 향기에 취해 행복하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코멘트현황
코멘트작성
※ 삭제나 수정시에 사용할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게시물처리 버튼
새글 작성하기 ▲ 다음글 보기 ▼ 이전글 보기 목록보기
게시판검색
자유게시판
순번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수
1621 즐거웠던 템플스테이^^
김서진 / 21-06-22 (화) / 조회 : 1,639
김서진21-06-22 10:591,639
1620 너무너무좋았어요^^
김민서 / 21-06-22 (화) / 조회 : 1,574
김민서21-06-22 10:591,574
1619 산보행~
박민영 / 21-06-22 (화) / 조회 : 1,508
박민영21-06-22 10:581,508
1618 bd2456
현종 / 21-06-18 (금) / 조회 : 1,564
현종21-06-18 14:371,564
1617 5월의 행복한 시간을 또 그리며 (Temple stay)
김종욱 / 21-05-23 (일) / 조회 : 1,631
김종욱21-05-23 22:031,631
1616 시대 단상
태준 / 21-04-11 (일) / 조회 : 1,534
태준21-04-11 16:131,534
1615 룩셈부르크에서 온 한지영가(靈駕)
현덕사 / 20-12-29 (화) / 조회 : 1,887
현덕사20-12-29 15:001,887
1614 현덕사의 즐거운 여름
현덕사 / 20-07-19 (일) / 조회 : 2,246
현덕사20-07-19 17:492,246
1613 현덕사 所見[2]
郆遜 / 20-07-09 (목) / 조회 : 2,186
2
郆遜20-07-09 10:002,186
1612 2019년 12월 중순[1]
감사합니다 / 20-04-28 (화) / 조회 : 2,286
1
감사합니다20-04-28 19:582,286
1611 좋은 데 태어나세요. 솔아(강아지) 영가!!![1]
현덕사 / 20-03-10 (화) / 조회 : 3,189
1
현덕사20-03-10 18:173,189
1610 실험쥐 위령제
현종 / 20-01-30 (목) / 조회 : 2,673
현종20-01-30 15:062,673
1609 저두 !!첫경험 템플스테이~~^^강추~[1]
유현순 / 19-10-19 (토) / 조회 : 3,026
1
유현순19-10-19 00:003,026
1608 현종스님 BBS 다보법회 유튜브4K 초고화질 동영상과 사진81장
변용구 / 19-07-25 (목) / 조회 : 3,135
변용구19-07-25 21:173,135
1607 ☕첫경험 템플스테이~현덕사[4]
윤은정 / 19-06-24 (월) / 조회 : 3,134
4
윤은정19-06-24 01:103,134
1606 비오는 아침[3]
법신화 / 19-06-07 (금) / 조회 : 2,743
3
법신화19-06-07 09:342,743
1605 누락
慈光이동록 / 19-05-25 (토) / 조회 : 2,669
慈光이동록19-05-25 19:382,669
1604 누락 된 사진 입니다
慈光이동록 / 19-05-25 (토) / 조회 : 2,717
慈光이동록19-05-25 19:322,717
1603 마음읽기_억지로라도 쉬어가라
현덕사 / 19-04-24 (수) / 조회 : 3,918
현덕사19-04-24 16:573,918
1602 현덕사의 봄[2]
법신화 / 19-04-24 (수) / 조회 : 2,496
2
법신화19-04-24 14:012,496
게시판 페이지 리스트
새글 작성하기
계좌안내 : [농협] 333027-51-050151 (예금주 : 현덕사)
주소 : (25400)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싸리골길 170 (삼산리, 현덕사) / 전화 : 033-661-5878 / 팩스 : 033-662-1080
Copyright ©Hyundeoksa. All Rights Reserved. Powerd By Denobiz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