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찻길 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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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현종 | ||
등록일 | 2022년 10월 27일 (15:20) | 조회수 | 조회수 : 1,157 |
중부일보 오피니언현종스님 칼럼 [현종스님칼럼] 기찻길 옆 풍경 절 마당에 나서니 선득 차가워진 공기가 볼에 와 부닥친다. 어느새 계절이 가을 한 가운데로 왔다. 저기 동해바다에 아침해가 떠오르는지, 만월산 아래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하늘빛이 참 곱다. 붉은 해의 기운을 등으로 받으며 산을 내려가, 서울역행 열차에 오른다. 전남 순천의 송광사로 가는 길이다. 하루 만에 돌아오는 일정, 평소보다 조금 발길을 서두른다. 요즘엔 사방으로 길이 뚫리고, 교통수단도 발달해서 하루 만에 강릉에서 순천까지 다녀올 수가 있다. 고속철도를 타면 멀미 한 번 없이 편안하게 앉아 여행할 수가 있다. 차내가 어찌나 조용하고 흔들림 없는지, 한강철교를 지날 때 ‘철끄덩’ 소리에 그제야 기차를 탔다는 느낌이 든다. 자다깨다 하면서, 눈을 뜰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새삼 ‘가을’이다. 강릉에서 서울까지는 울긋불긋 산이 많았는데, 호남선 밖 풍경은 그야말로 만경 들판에 황금빛 물결이다. 일찌감치 추수를 마친 논에는 볏짚을 소먹이로 주려고 하얀 비닐로 포장해 놓은 게, 엄청난 크기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먹는 마시멜로를 연상시킨다. 어떤 곳은 논 바닥에 거대 마시멜로 천지다.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고, 하얀 백로가 물고기를 낚는다. 하늘을 향해 쭉 뻗어 핀 갈대도 보인다. 잠시 쉬었다 다시 눈을 뜨니 이번엔 누렇게 익은 둥근 호박이 보인다. 잘 익은 감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가을볕에 잘도 익어간다. 어느 집의 산소는 자손들이 정성을 다해 단정하게 벌초를 아주 잘 해두었다. 조상을 생각하는 오롯한 마음이 느껴져 절로 미소지어진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한다. KTX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내가 탄 열차 칸의 앞 좌석부터 끝까지 쭉 훑어 살펴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래, 계절이 계절인 만치, 책 대신 창 밖의 풍경을 마음의 양식 삼는 것도 좋으리라, 스스로 위안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창 밖 보는 이도 한 사람 없고, 모두 귀에 이어폰까지 꽂고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안만 들여다 보고 있다. 그래, 저 작은 기계 안에 온 천지를 끌어들이고 있으니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하고 넘어간다. 백두대간 대관령 밑을 터널을 만들어 기차가 지난다. 인간의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라졌지만, 자연의 시간은 어제도 오늘도, 1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똑같이 흐른다. 자연은 그 누구의 부추김에도, 성화에도, 또는 간곡한 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저만의 속도로 흘러간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라지만, 그것이 그저 자연의 이치다. 쉼 없으나 서두름 역시 없다. 그렇기에 자연은 어느 시간에나 본연의 단단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자연은 세계 어느 가경(佳景)에 견주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데다가 푸근하고 소박한 느낌까지 정겨움을 더해주는 경관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그런지라 자연의 풍경 속엔 또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송광사까지 오가는 열차 밖엔 부부인 듯한 농부 내외가 요즘 보기 드문 도리깨로 밭에서 들깨 타작도 하고 있다. 철로 가까운 곳 우사 안에는 소들이 따스한 가을 햇살에 졸음에 겨워 꾸벅꾸벅 졸고 있다. 가을 국화 덤불이 지나간다. 쑥부쟁이가 보인다. 미루나무도 휙휙 지나간다. 어느 한적한 농촌 시골 마을을 지날 땐 낮은 집들을 앞으로 두고 생뚱맞게도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저도 민망한지 어색한 모습이다. 판넬 지붕이 끝도 없이 나온다. 공장이고 축사고, 심지어 사람 사는 집도 징크라는 판넬로 지은 집들이다. 빨간색 십자가도 보인다. 어디쯤은 전봇대만큼이나 십자가가 많이 보인다. 모두 우리 사람 사는 자연이다. 강릉에 다시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져 하늘이 까맣게 어두워졌다. 새벽 남행길에 본 그 하늘이 맞나 싶을 정도다. 어두운 가운데 바다내음이 짙게 밀려온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그 어느 곳보다 자연의 품어줌이 넉넉한 도량, 현덕사로 돌아왔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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