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산 이야기

게시물열람
제목

[현종칼럼] 잡풀이 주는 즐거움

작성자현덕사
등록일2023년 07월 31일 (20:47)조회수조회수 : 892

잡풀의 계절이 찾아왔다. 매년 여름의 산사는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 장마철의 잡풀은 앞에서 매며 뒤돌아보면 뒤에 풀들이 따라 온다고 했다. 그만큼 쑥쑥 자란다.

우리 현덕사는 마당이 넓은 편이다. 분명 어제 해거름에에 말끔히 풀을 맸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공양하러 가는 길에 보면 그새 풀이 올라와있다. 마당의 풀을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뽑는다. 그러니 여름철 내 손에는 항상 잡초가 들려 있다.

하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 방편으로 너른 마당에 자갈을 쫙 깔았다. 처음에는 자갈을 깐 덕을 봤다. 신기하게도 풀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니 결국 온갖 잡풀이 자갈층을 뚫고 올라왔다.

참으로 강인한 생명력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호랑이가 새끼를 쳐도 될 만큼 무성하게 풀이 자란다. 특히 닭장의 풀은 뿌리째 뽑혀 바짝 말라 죽은 것을 본 것 같은데, 비 한 번 내려 뿌리에 물기만 조금만 닿으면 바로 살아난다.

번식력은 바랭이가 최고 일것이다. 바랭이 한 포기면 오래지 않아 주위를 온통 바랭이 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마디마디로 뿌리를 내려 세력을 넓혀 간다. 만약에 씨라도 여물어 퍼진다면 속수무책이다.

특히 도둑놈풀하고 한삼덩쿨과 며느리밑씻개는 보는 족족 뽑아 버린다.

참으로 무서운 잡초들의 생명력이다.

물론 제초제를 치면 수고로움 없이 마당의 풀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약을 맞아 벌겋게 타 죽은 풀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게다가 마당에서는 우리 절의 강아지들이 뛰어다니고 뒹굴며 놀고, 배를 깔고 볕을 쬐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스무살 쯤 된 터줏대감 흰둥이와 예닐곱 살 된 현덕이다. 흰둥이와 현덕이 뿐만 아니라 절을 찾는 손님들이 가끔 데리고 오는 반려견들도 있다. 그래서 앞마당에는 웬만해서는 약을 못 치게 한다. 그렇다고 자라나는 풀을 그대로 둘 순 없으니, 결국 풀을 뽑는 것은 내 몫이다.

잡풀을 뽑다보면 소소한 즐거움도 만난다. 김을 매다 보면 간혹 살리고 싶은 것도 있다. 가느다란 줄기에 보라색 작은 꽃이 핀 제비꽃은 차마 뽑을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코스모스도 몇 포기는 살려 두었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엉뚱한 곳에 나있으면 마음을 독하게 먹고 뽑아 버린다. 그러고 보면 누구라도 자기가 설자리 앉을 자리를 잘 살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작은 풀로부터 얻는 가르침이다.

호미로 잡초 뿌리를 캐다 보면 지렁이나 굼벵이 같은 땅 속 작은 생명체를 종종 만난다. 내가 갑자기 흙을 들춰내어 놀란 듯 움직거리는 것을 보면, 자기만의 세상에서 잘 살고 있던 그들의 터전을 파괴한 것만 같아 미안해진다. 실수로 상하게 하거나 죽어 나오면 내 마음도 그만한 아픔을 느낀다. 늘 하는 지장염불로 그들의 영혼을 기도해주고, 매년 10월 ‘현덕사 개산법회 동식물천도제’를 지낼 때 ‘망 지렁이 영가’‘망 굼벵이 영가’라고 위패를 써 붙여 합동천도제를 지내 준다. 이 세상에 오래 살기를 염원하지 않는 생명체란 없다.

넓은 마당에 혼자 엎드려 잡풀을 뽑다 보면 별별 상념이 다 떠오르기도 한다. 잡초를 뽑아 버리듯이 내 안의 번뇌망상도 뽑아 버리면 좋으련만끈질긴 생명력의 잡초처럼 뽑아도 뽑아도 올라온다.

그렇게 기도하듯 땀 흘리며 풀 뽑기를 하다 보면 마음도 평온해진다. 잡초를 한참 뽑다 보면 오직 잡초와 호미 끝만 보인다. 마치 김매기 삼매에 든 듯, 참선을 하는 듯 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옛 조사 스님들께서 "하는 일마다 다 수행"이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번뇌도 잡초를 말끔하게 뽑아버린 마당처럼 이 마음도 명경처럼 맑고 선한 마음이 될 것이다.

호미로 한참 잡풀을 메다 보면 등에 땀이 흐른다. 몸은 덥지만 기분이 좋은 느낌이다. 그래서 오늘도 번뇌를 없애는 마음으로 잡초를 뽑는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출처 : 중부일보  

코멘트현황
덕화
덕화 | 23/08/02 11:40
동식물을 사랑하시는 스님 감사합니다
23/08/02 11:40
덕화
덕화 | 23/08/02 11:42
인연이 닿으면 저도 찾아뵐듯 합니다
23/08/02 11:42
이혜숙
이혜숙 | 23/08/10 08:03
스님 풀 뽑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23/08/10 08:03
김명숙
김명숙 | 23/09/03 09:18
그 날, 자갈밭에 두다리 쭉 뻗고 앉아 주지스님과 함께 잡초 뽑기를 한 영광이 있었네요ㆍ열중하다보니 무념무상으로 이것 또한 마음을 닦는 수행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ㆍ다음 날 아침 잡초뽑기 더 하고싶었는데ᆢ그냥 떠나오게 돼서~ ^^
주지스님의 툭툭 던지시는 일상대화가 제 맘에 법문처럼 전해저와 좋았습니다ㆍ감사합니다ㆍ
23/09/03 09:18
코멘트작성
※ 삭제나 수정시에 사용할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게시물처리 버튼
새글 작성하기 ▲ 다음글 보기 ▼ 이전글 보기 목록보기
게시판검색
자유게시판
순번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수
공지 마음읽기_억지로라도 쉬어가라
현덕사 / 19-04-24 (수) / 조회 : 3,915
현덕사19-04-24 16:573,915
1661 현덕사 개산 25주년 법회
현종 / 24-10-15 (화) / 조회 : 216
현종24-10-15 09:08216
1660 말과 글은 우리의 얼이다.
현종 / 24-06-04 (화) / 조회 : 493
현종24-06-04 14:26493
1659 뉴질랜드에 나투신 우리부처님
현종 / 24-03-25 (월) / 조회 : 590
현종24-03-25 08:12590
1658 눈내린 들길을 어지러이 걷지마라
현종 / 24-03-04 (월) / 조회 : 611
현종24-03-04 08:41611
1657 라디오방숭들으며
세명장순희법명수선화 / 24-01-26 (금) / 조회 : 0
세명장순희법명수선화24-01-26 17:580
1656 현덕이를 떠나보내며....
현덕사 / 24-01-20 (토) / 조회 : 999
현덕사24-01-20 11:08999
1655 날마다 좋은 날이다 ㅡ중부일보
현종 / 24-01-11 (목) / 조회 : 694
현종24-01-11 19:25694
1654 돈의 가치를 높이자
현종 / 23-12-07 (목) / 조회 : 739
현종23-12-07 10:48739
1653 모델 한혜진 현덕사 템플스테이 참가했습니다[1]
현덕사 / 23-10-15 (일) / 조회 : 1,513
1
현덕사23-10-15 13:491,513
1652 물의 소중함을 깨닫다.
현종 / 23-09-04 (월) / 조회 : 778
현종23-09-04 08:47778
[현종칼럼] 잡풀이 주는 즐거움[4]
현덕사 / 23-07-31 (월) / 조회 : 893
4
현덕사23-07-31 20:47893
1650 [현종칼럼] 고라니의 횡포
현덕사 / 23-06-26 (월) / 조회 : 927
현덕사23-06-26 09:56927
1649 흰둥이의 장수 사진
현종 / 23-05-30 (화) / 조회 : 1,149
현종23-05-30 10:301,149
1648 전법의 길로 내아가자
현종 / 23-05-21 (일) / 조회 : 859
현종23-05-21 20:44859
1647 [중부일보] 5월의 산사, 깨달음의 길로 가는 곳
현종 / 23-05-15 (월) / 조회 : 878
현종23-05-15 09:43878
1646 [불교신문] 강릉 현덕사, 화마 휩쓴 인월사에 복구지원금 1천만원 후원
현덕사 / 23-04-16 (일) / 조회 : 910
현덕사23-04-16 20:47910
1645 [현종칼럼] 현덕사의 고참 흰둥이
현덕사 / 23-04-16 (일) / 조회 : 960
현덕사23-04-16 20:45960
1644 강릉산불피해 인월사 돕기 모금
현종 / 23-04-13 (목) / 조회 : 877
현종23-04-13 08:30877
1643 현덕사의 고참 흰둥이ㅡ중부일보ㅡ
현종 / 23-04-11 (화) / 조회 : 922
현종23-04-11 05:37922
1642 템플스테이 후기[1]
수원 / 23-03-22 (수) / 조회 : 933
1
수원23-03-22 11:55933
게시판 페이지 리스트
새글 작성하기
계좌안내 : [농협] 333027-51-050151 (예금주 : 현덕사)
주소 : (25400)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싸리골길 170 (삼산리, 현덕사) / 전화 : 033-661-5878 / 팩스 : 033-662-1080
Copyright ©Hyundeoksa. All Rights Reserved. Powerd By Denobiz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