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눈내린 들길을 어지러이 걷지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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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현종 | ||
등록일 | 2024년 03월 04일 (08:41) | 조회수 | 조회수 : 620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오피니언 현종스님 칼럼 [현종칼럼] 내가 걸은 발자국이 이정표 되리라 입력 2024.03.03 17:05 기자명 현종 꽃피는 계절 삼월이다. 남녘에서 매화가 만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향기로운 매화 향이 코끝에 스며드는 듯하다. 하지만 이곳 만월산 현덕사는 아직도 한겨울이다. 온천지가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쌀가루를 쌓아놓은 듯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평화롭게 보인다. 실제로 산속에 사는 사람들은 눈 때문에 고행의 연속인데. 그래도 남녘 매화 향을 따라 이곳 현덕사 매화도 만개하리라. 현덕사는 도량이 넓어 눈길 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올해처럼 허리까지 내린 눈을 치워 길 내기는 더더욱. 토끼 굴처럼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 길만 내고 다닌다. 눈길을 걸을 때 떠오르는 옛 시 구절이 있다. 눈 내린 들길을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은 이 발자국은 뒤 따라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 되리라는 시이다. 그러므로 눈 내린 후 포행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기 부담스럽다. 템플스테이 온 사람들이 내 발자국을 따라 밟고 오기 때문이다. 그 산책길을 20여 년 걸어 다녀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박혀있는 작은 돌멩이까지 눈에 선하다. 어디에 물구덩이가 있고, 물기가 항상 스며있어 미끄러운 진흙길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곳을 모르고 밟으면 영락없이 신발에 물이 들어가거나 미끄러져 자빠지기 십상이다. 내가 넘어지거나 자빠지는 것은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상처 나거나 다치게 될까 봐, 한 걸음이라도 정확하게 디디려고 노력한다. 내 발자국을 따라 오는 이들을 위해.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도시 학생이거나 젊은 사람들이어서, 흙길이나 쌓인 눈길 걷는 게 처음인 경우 많다. 낮에 녹은 눈이 밤에 얼어붙은 빙판길은 더 위험천만이다. 눈길이나 빙판길을 걷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넘어지지 않고 걷는 요령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다리에 힘이 너무 들어가거나 빼면 넘어지기 쉽다. 적당히 힘을 주고 사뿐사뿐 춤추듯이 걸어야 안전하다. 부처님의 절대적 가르침인 중도의 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은 어딜 가나 포장길이라 발자국을 볼 수 없지만 눈 내린 다음에는 내 발자국을 되돌아보고, 걸음걸이를 점검해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하길 좋아한다. 아무리 날씨가 심술을 부려도 봄을 알리는 전령들은 조용히 각자의 역할을 눈 속 언 땅 속에서 꾸준히 하고 있다. 이렇게 쌓인 눈도 때가 되면 봄 햇살에 자연스레 녹고, 눈 속에서 눈물을 먹고 인내한 온갖 봄꽃들이 피어나리라. 추위 견디며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는 꽃 중에 눈 속에서 노랗게 피는 복수초가 있다. 엄동설한 폭설에 복수라도 하듯 피는 꽃, 이름도 복수초. 바로 뒤이어 노루귀꽃도 쫑긋 피어날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자기의 자리에서 본연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하물며 우리 사람들이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마는, 그렇지 못한 게 이 시대 우리나라의 지도층이나 정치인 그리고 종교인들 아닌가. 그들의 한심한 작태를 보면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옛말에 아이들 앞에서는 찬물도 마음대로 못 마신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뒤따라 밟고 가듯이. 얼마 전 황당해서 헛웃음 나오는 일이 있었다. 템플스테이 사찰인 이곳 현덕사에는 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 난생처음 불교를 접하거나 절을 방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법당에서 예불도 처음으로 한다. 기도스님의 인솔로 새벽 예불을 하는데, 그들은 절을 할 때 기도스님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평소에 하는 오체투지가 아닌 약간 고개만 숙이는 이상한 절이었다. 다행히 나를 따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오체투지의 절로 예불을 마칠 수 있었다. 이렇듯 해괴망측하게 배운 절을 어디서든 할 거라 생각하니, 인솔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사 모든 일이 이럴진대, 이 시대는 옳은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말하는 게 헛말이 아니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다. 아이는 어른이 하는 것을 그대로 배우고 따라 한다. 따라 배울 어른이 없으니 망나니들만 설치는 세상이 된 것 아닐까. 누군가가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나부터 작은 것이라도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하며 살아야겠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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