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행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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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승현스님 | ||
등록일 | 2012년 03월 16일 (15:44) | 조회수 | 조회수 : 2,896 |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러 가지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욕망이나 분노, 어리석음, 질투, 아만 등 인간의 무지는 숙명적으로 삶을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수행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방편이다. 탄생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탐(貪) 진(瞋) 치(癡) 삼독심으로 오염되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본래의 맑고 밝은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일이다. 부귀와 명예, 권력을 소유하기 위한 끝없는 욕망,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일어 나는 만이나 화. 이 모든 것들이 어리석고 무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인간은 이러한 삼독심(三毒心)을 바탕으로 수많은 경험, 기억, 생각, 관념, 가치관 등의 쓰레기를 몸과 마음에 쌓아온다. 그 결과 인간의 심신은 어느덧 답답하게 막 히거나 탁한 흙탕물 같은 상태가 되어간다.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고, 비워내고, 닦아주고, 보듬어 줌으로써 ‘나라고 하는 존재’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자하는 일, 그것이 바로 수행인 것이다. 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깨달음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수행은 그것에 대한 깊은 탐구이면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 어떤 대상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로운 부처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행의 궁극인 깨달음과 우리가 일상에서 찾고자 하는 행복이나 마음의 평화는 따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세상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라는 뿌리에서 자란 가지들이다. 바로 그 대자유가 부처이고 해탈이며 큰 깨달음이다. 인간은 원래 그런 대자유인이었다. 본래 부처라고 한다. 그런데 우주와 인생에 깃들어 있는 궁극적인 이치를 밝게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에 급급하고 얽매여서 온갖 업을 지으며 헛되이 윤회를 한다. 이것이 무명(無明)이다. 진리에 대해 무지한 상태라는 뜻이다. 인간이 무명에 빠져드는 이유는 바로 ‘나’라는 아상과 그로 인한 번뇌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라는 생각은 인간의 필연적 조건이 되어서 삶 전반에 따라다닌다. 말 못하는 갓난아이도 ‘나’의 엄마를 찾는다. 그 아이는 차츰 성장하면서 나의 가족, 나의 성격, 나의 자존심, 나의 재산을 끌어안게 된다. 이른바 아상(我相)이 생기는 것이다. 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만 명이 모두 다른 아상을 가지고 산다. 부모가 다르고 형제가 다르며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상은 곧 수많은 번뇌를 만들어낸다. 번뇌 중에서 가장 뿌리 깊은 것이 탐진치 삼독심이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지 못하게 하는 대표적인 독약과 같은 것들이다. 수행은 바로 이러한 아상과 번뇌를 소멸해가는 몸과 마음의 작업이기도 하다. 생각을 소멸하고 견해를 소멸하고 의도를 소멸하고 욕심을 소멸하고 감정을 소멸하는 일이다. 수많은 번뇌를 소멸함으로써 여기에 본래 있었던 부처와 평화, 자비, 행복을 찾아가는 일이다. 원래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인 것이다. 내안에 본래 있었던 평화와 자비, 행복을 찾아가는 수행자의 몸과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은 유연성과 면역력이 생성된다고 한다. 이는 몸과 마음의 찌꺼기들이 떨어져나감으로써 생기는 필연적 현상이다. 만성 통증, 두통, 신경증, 우울증, 고혈압, 심장병 등의 완화나 치료효과는 수행의 응답이기도 하다. 드문 경우지만, 수행을 했다하여 수행 경력을 훈장처럼 뻐기는 경우가 있다. 드러나지 않는 속마음에 그칠지라도 그것은 ‘나’라는 상이 분명한 수행병 증세이다. 이 병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약이나 가르침으로도 치유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시도 쉼 없이 자신이 몸과 마음을 살펴서 ‘나’라는 마구니의 꼬임에 빠지지 않을 일이다. |
| 12/03/16 17:55 마음의 수행을 하고갑니다 | 12/03/16 1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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