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것이 소중하면 남의것도 소중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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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현종 | ||
등록일 | 2022년 12월 20일 (07:54) | 조회수 | 조회수 : 937 |
중부일보 [현종스님칼럼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다 이 시대는 다종교 시대이다. 세계엔 수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 다양한 종교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국내에서 종교 간의 분쟁이나 갈등이 크게 불거진 적은 없었다. 그것은 종교적 다양성에 대한 성숙한 시민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나라 종교의 장자(長子)인 불교의 원융화합과 대자대비 사상의 실천으로 인함이 컸다. 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은 예수님을 비롯한 타 종교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으로 대한다. 두두물물이 부처 아닌 게 없고 일일이 다 불사이며, 그래서 하는 일마다 사사불공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최근 한 불교계 신문을 보다 그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해당 기사에는 천주교가 초대형 나전칠화 속에 불교의 법계도를 그려놓고는 "강강수월래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보도가 담겨 있었다. 법계도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系圖)를 말한다. 신라의 승려 의상이 화엄학의 법계연기 사상을 서술한 그림시로, 우리 불교계의 오랜 유산이자 불교적 깨달음의 상징적 체계도다. 이런 법계도를 천주교의 상징체계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부처님은 예수님이다"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더라도, 법계도가 무엇인지 본다면 누구라도 그것이 불교의 오랜 상징물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만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상식이다. 세상의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종교 역시 서로 간에 좋은 것은 배우고 취해가며 발전한다. 특히 인류의 오랜 종교로서 불교는 천주교 등 타 종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천주교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염주도 묵주라는 이름으로 가져다 쓰고 있다. 제사도 지내고 심지어 불교의 의식인 49제도 이름만 달리 하여 지낸다고 한다. 스님들의 오랜 수행법인 참선도 명상이란 이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행태가 선을 넘기 시작했다. 법계도를 자신들의 문화로 주장하는가 하면, 이에 앞서서는 조선시대 전통사찰 천진암을 "한국천주교회의 발상지"라며 ‘천주교 성지’로 홍보하기도 했다. 천진암은 조선시대 스님들이 박해를 피해 찾아온 가톨릭 신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품어 준 암자다. 천진암이 한국 천주교사에 있어 중요한 획을 그었다면, 그것은 우리 스님들의 경계 없는 자비심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그저 천주교 성지라니.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 아닌가.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에서 수 많은 세금을 들여 만든 서소문 공원은 버젓이 천주교 성지가 되었다. 이 시대 이 때에 어느 한 종교만을 위한 성지를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 정책이 아주 후진국이나 어느 후진 종교국가에서나 했을 행정을 하고 있다. 정말 가당치 않은 일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천주교 교인만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태를 보고 있자니 30여 년 전, 네팔 카트만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방문한 한 불교 사찰에 예수를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왜 절에 예수그림을 걸어두었냐고 따져 묻자, 당시 그 사찰의 승려 한 분이 ‘예수보살 역시 우리와 똑같은 부처님의 제자였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후 나온 한 인기 서적은 예수의 ‘잃어버린 16년’ 동안의 행적에 대해 다뤘다. 이 책에 따르면 16년의 시간동안 예수는 인도에 있었으며, 부처의 제자로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불공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도를 넘어도 너무 넘은성 싶다. 천진암의 천주교 성지화도 그렇지만, 버젓이 주인이 있는 물건을 훔쳐가는(사상과 철학도 물건이라면 말이다) 것을 그저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작금의 사태 앞에 사회정의를 위해 발로 뛴다는 수많은 언론들이 그저 펜대를 놓고 있다. 비불교계의 무관심은 그래도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불교계조차 조용한 것은 어찌된 일인가. ‘큰스님’이라 불리는 분들도, 불교계의 수많은 재가 불교학자들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은, 우리 불교계가 반성해야할 일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불제자가 없는데 스님이 왜 필요하며 불자가 없는데 불교의 수많은 지식인이나 학자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제 침묵을 깨고 불교계가 분연히 들고 일어나야 한다. 분명하게 사실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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