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풀의 계절이 찾아왔다. 매년 여름의 산사는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 장마철의 잡풀은 앞에서 매며 뒤돌아보면 뒤에 풀들이 따라 온다고 했다. 그만큼 쑥쑥 자란다.
우리 현덕사는 마당이 넓은 편이다. 분명 어제 해거름에에 말끔히 풀을 맸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공양하러 가는 길에 보면 그새 풀이 올라와있다. 마당의 풀을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뽑는다. 그러니 여름철 내 손에는 항상 잡초가 들려 있다.
하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 방편으로 너른 마당에 자갈을 쫙 깔았다. 처음에는 자갈을 깐 덕을 봤다. 신기하게도 풀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니 결국 온갖 잡풀이 자갈층을 뚫고 올라왔다.
참으로 강인한 생명력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호랑이가 새끼를 쳐도 될 만큼 무성하게 풀이 자란다. 특히 닭장의 풀은 뿌리째 뽑혀 바짝 말라 죽은 것을 본 것 같은데, 비 한 번 내려 뿌리에 물기만 조금만 닿으면 바로 살아난다.
번식력은 바랭이가 최고 일것이다. 바랭이 한 포기면 오래지 않아 주위를 온통 바랭이 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마디마디로 뿌리를 내려 세력을 넓혀 간다. 만약에 씨라도 여물어 퍼진다면 속수무책이다.
특히 도둑놈풀하고 한삼덩쿨과 며느리밑씻개는 보는 족족 뽑아 버린다.
참으로 무서운 잡초들의 생명력이다.
물론 제초제를 치면 수고로움 없이 마당의 풀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약을 맞아 벌겋게 타 죽은 풀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게다가 마당에서는 우리 절의 강아지들이 뛰어다니고 뒹굴며 놀고, 배를 깔고 볕을 쬐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스무살 쯤 된 터줏대감 흰둥이와 예닐곱 살 된 현덕이다. 흰둥이와 현덕이 뿐만 아니라 절을 찾는 손님들이 가끔 데리고 오는 반려견들도 있다. 그래서 앞마당에는 웬만해서는 약을 못 치게 한다. 그렇다고 자라나는 풀을 그대로 둘 순 없으니, 결국 풀을 뽑는 것은 내 몫이다.
잡풀을 뽑다보면 소소한 즐거움도 만난다. 김을 매다 보면 간혹 살리고 싶은 것도 있다. 가느다란 줄기에 보라색 작은 꽃이 핀 제비꽃은 차마 뽑을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코스모스도 몇 포기는 살려 두었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엉뚱한 곳에 나있으면 마음을 독하게 먹고 뽑아 버린다. 그러고 보면 누구라도 자기가 설자리 앉을 자리를 잘 살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작은 풀로부터 얻는 가르침이다.
호미로 잡초 뿌리를 캐다 보면 지렁이나 굼벵이 같은 땅 속 작은 생명체를 종종 만난다. 내가 갑자기 흙을 들춰내어 놀란 듯 움직거리는 것을 보면, 자기만의 세상에서 잘 살고 있던 그들의 터전을 파괴한 것만 같아 미안해진다. 실수로 상하게 하거나 죽어 나오면 내 마음도 그만한 아픔을 느낀다. 늘 하는 지장염불로 그들의 영혼을 기도해주고, 매년 10월 ‘현덕사 개산법회 동식물천도제’를 지낼 때 ‘망 지렁이 영가’‘망 굼벵이 영가’라고 위패를 써 붙여 합동천도제를 지내 준다. 이 세상에 오래 살기를 염원하지 않는 생명체란 없다.
넓은 마당에 혼자 엎드려 잡풀을 뽑다 보면 별별 상념이 다 떠오르기도 한다. 잡초를 뽑아 버리듯이 내 안의 번뇌망상도 뽑아 버리면 좋으련만끈질긴 생명력의 잡초처럼 뽑아도 뽑아도 올라온다.
그렇게 기도하듯 땀 흘리며 풀 뽑기를 하다 보면 마음도 평온해진다. 잡초를 한참 뽑다 보면 오직 잡초와 호미 끝만 보인다. 마치 김매기 삼매에 든 듯, 참선을 하는 듯 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옛 조사 스님들께서 "하는 일마다 다 수행"이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번뇌도 잡초를 말끔하게 뽑아버린 마당처럼 이 마음도 명경처럼 맑고 선한 마음이 될 것이다.
호미로 한참 잡풀을 메다 보면 등에 땀이 흐른다. 몸은 덥지만 기분이 좋은 느낌이다. 그래서 오늘도 번뇌를 없애는 마음으로 잡초를 뽑는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출처 : 중부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