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금 내려고 몸부림 치는 승려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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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9년 02월 12일 (16:56) | 조회수 | 조회수 : 3,536 |
"세금 내려고 몸부림 치는 승려들" -민중은 종교를 興旺케 하고, 滅亡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의 행위들 민중은 평소에는 권부(權府)보다 힘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민중이 요원의 들불처럼 일어나면 제국도 만들어 유지하게 하고, 멸망하게도 하며, 종교도 흥왕케 하고 멸망하게도 하는 능력이 있다. 신라불교가 이땅에 흥왕하게 된 것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신심과 원력도 있었지만 유명무명(有名無名)의 민중들의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찬란한 신라불교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고려말의 불교가 망한 것은 부처님의 법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불법을 운용(運用)하는 그 시대의 승려들의 의식탓이었다. 고려말의 대다수 승려들은 복진타락(福盡墮落)의 나락에 떨어지는 액운에 빠졌으니 이는 온전히 만고불변의 진리인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인과응보였다. 속담에 “재수없는 놈과 함께 있으면 벼락맞는다” 는 것처럼 승려 가운데는 부처님이 실천했던 수행자로써 일생을 살았지만, 고려말의 대다수 승려가 수행과는 십만팔천리인 권부에 아부하는 정치승과 매불(賣佛)로 모리배(謀利輩)적인 부패한 업을 지었기 때문에 부패승려들과 동타지옥(同墮地獄)을 하듯이 배불시대의 액운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조의 배불사상(排佛思想)에서 나온 배불정책(排佛政策)은 태조 이성계의 발상도 아니요, 이성계의 심복대신인 ‘정도전’의 발상도 아니다. 고려왕실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새왕조를 여는 이성계와 추종대신들은 당시 민중의 함원(含怨)이 담긴 배불사상의 외침을 무시할 수 없었고, 민중의 외침을 창업정책에 수렴하여 실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중의 배불사상은 이조초의 위정자들이 가장 큰 실천해야 할 정책으로 변화하였고, 그 여파는 왕궁과 초야백성으로부터 왕사(王師)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으며 존중받아오던 승려들을 타도하는 시절을 열고 말았다. 민중은 관아(官衙)와 한통속이 되어 어제까지 존경하는 승려들을 들개 때려 잡듯이 몽둥이로 잡아 관아에 넘겨 보상금을 챙기는 광풍의 시절을 만들었다. 민중에 의해 강제 체포되어 관아에 넘겨진 승려는 관아에서 조정의 지침을 엄수하는 관리들에 의해 저 북한정치체제처럼 승려를 민중의 고혈을 착취하는 자로 규정하여 투옥하고, 주리틀고 매때려 강제 환속조치를 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위정자들이 고려말의 부패한 승려들의 재산을 강탈한 것은 두 말해서야 무엇하겠는가. 당시 위정자들은 왕조가 뒤바퀸 허탈감과 분노에 빠진 민중들을 선동하여 분노의 분출구로 배불사상의 선봉에 나서게 하였다. 승려를 붙잡아 관아에 넘기면, 두당(頭當) 얼마의 계산으로 보상금을 받게 되고 사찰땅을 무상 분배해준다는 감이언설에 광분하여 승려잡기에 나선 것이다. 저 북한에서 승려 및 종교인들을 인민의 적으로 재판하여 처형하고, 사찰과 재산을 국유화하여 인민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과 오십보 백보였을 것이다. 왕사, 국사로써 받들고 존경받던 승려들은 하루아침에 팔천민(八賤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침내 승려는 지금의 서울인 도성출입금지령(都城出入禁止令)을 받는 처절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승려들이 천민으로 전락하고, 강제환속당하며, 사찰재산을 빼앗기고, 심지어 도성출입금지령까지 받는, 피를 토하며 비통히 절규해야 할 잘못, 즉 인과의 업을 지은 장본인들은 부패한 승려 자신들이었다. 억압받는 민초들을 위로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며 함께 종교생활로 인도해야 할 책무가 있는 승려들이 민중은 외면하고, 오직 권부의 시녀로써 이권을 챙기고, 탐욕스러운 모리배의 매불(賣佛)행위에 혈안이 되어 재물을 챙기었고, 또, 노비해방(奴婢解放)을 앞서 실천해야 할 승려들이 사찰에 남녀노비를 무수히 두어 혹사하고, 적멸의 수행전법도량이어야 할 사찰에서 가무음곡(歌舞音曲)의 질탕한 풍악속에 졸부(猝富)적 타락의 길로 매진하였으니 민중으로부터 외면당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스로 배불정책의 시절을 열고 만 것이다. ▲법당앞에서 속세의 굿판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고려말의 불교처럼 적멸의 도량에 풍악이 시작되고 있다. 배불(排佛)은 인과이다. 혹자는 미군의 한국 주둔으로 종교의 판세가 뒤 바뀌는 듯 전망했다. 5천년 역사에 주한 점령군이 오지 않은 적이 몇몇해이던가? 주한 당(唐)군, 주한 원군(元軍), 주한 명군(明軍), 주한 청군(淸軍), 주한 일군(日軍), 주한미군(美軍)이지 않는가. 일부 한국인들은 강한 서방이 없으면 두려워 잠을 못잔다는 겁많은 여자처럼, 외국의 막강한 점령군이 한국에 주둔해 있지 않으면 두려워 다리뻗고 단잠을 못자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점령군은 으레 막강한 무력과 함께 점령군의 신(神)을 앞세우고 온다. 무력으로 점령지의 사람들의 신체를 억압하여 종속시키고, 신을 내세워 민족전통의 신앙을 배반케 하여 자신들의 신에게 즉 자신들에게 종속시키려고 책모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점령해 있는 기간에 우리는 누구보다 앞장서 정치인들이 점령군에 아부하기 위해 점령군의 신에게 복속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점령군이 막강한 무력과 신을 내세우지만, 대다수 민중은 점령군의 무력과 점령군의 신에 복종하지 않았다. 민중은 16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불교를 절대 외면하지 않았다. 민중들이 전국방방곡곡 산사와 초암(草庵)에 이르기 까지 지성껏 찾아가 사찰을 유지 발전시켜주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불교는 민중의 따뜻한 정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 한국불교의 일부에서는 과거 배불정책을 불러일으킨 행위와 오십보 백보의 괴상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 첫째, 수행과 전법의 적멸의 도량이어야 할 전국의 사찰에서 앞다투어 ‘산사음악회’라는 미명하에 가무음곡의 풍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산사는 신성이 충만한 대적멸의 도량이어야 한다. 음악회의 굿판은 저자거리에서 벌여져야 할 것이다. 산사는 저자의 굿판이 아닌 산사고유의 음악이 있다. 산사의 북소리, 종소리, 목탁소리와 승려의 독경소리, 풍경소리, 온갖 새소리,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이다. 적멸의 도량은 오직 자연의 소리와 불교음악만이 충만해 있어야 하고, 그것이 곧 진짜 가슴을 울리는 산사음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종로 탑공공원 원각사는 매일 많게는 250여명까지 노인무료급식의 자비를 베플고 있다. 민중을 부처님처럼 모시는 불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작금의 전국의 사찰의 일부에서는 가난한 민중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거액의 돈을 들여 산사음악회의 굿판을 다투어 열고 있다. 누구를 위한 산사음악회인가? 노래 몇 곡 부르고 1천만원정을 받는 곳은 산사음악회라고 하니 과연 졸부적 작태를 보인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을 부릅뜨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다 뒤져 보시라. 부처님이 수행도량에서 산사음악회를 개최하라는 말씀이 있는가. 부처님은 ‘사분율’에 수행자는 가무음곡이 있는 곳에는 절대 가지말라는 계율을 정하셨다. 부처님의 정하신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산사음악회를 여는 뜻은 나변에 있는가? 주최자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중생을 위해서이고, 사찰을 홍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돈있고, 시간여유 있는 사람들이 먼 산사에까지 와서 음악을 들으러 올 수는 있다. 하지만 사하촌(寺下村)에서 조차 바빠서 참여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중생들은 입을 모와 말한다. 중생을 위한 음악회라면, 돈 있는 사찰의 이름으로 사찰이 아닌 중생이 있는 저자에서 음악회를 열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니면, 산사음악회의 비용으로 가난하여 진학못하는 소년소녀의 장학금, 또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중생을 위해 보시금을 내놓는 것이 백번 낫다고 말한다. 불우한 중생은 외면하고, 사찰에서 음악회의 굿판만 벌인다면, 졸부들이 제돈 있다고 해서 제집안에 손님들을 초청해놓고 음악회의 긋판을 벌이는 것과 하등 다를게 없다고 지탄하는 것이다. 천년고찰이 홍보를 위해 굿판을 벌인다면 개가 웃을 일이다. 둘째, 승려들이 각종 외제차를 비롯해서 각종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행위를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외제차의 주인되는 승려의 옷을 보면 인위적으로 더덕더덕 기운 가짜 누더기 옷이요, 검소하게 보이는 무명옷들이 많다. 의복은 수행자의 옷을 입은 것이다. 필자는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승려, 벤츠를 타는 승려 그 외 억대에 가까운 차를 타고 다니는 승려에게 주의를 주니 그들의 말은 하나같이 “신도가 사주어서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대한민국에 어느 신도가 승려에게 외제차를 사주고, 유지비까지 대준다는 말인가? “나는 시줏돈을 많이 훔쳤습니다”는 홍보를 스스로 하고 다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세금 내려고 몸부림 치는가 지난 4월 중순쯤,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 정문 앞에는 남녀들이 프랑카드와 구호판을 들고 조계사를 향해 핸드 마이크로 외치고 있었다.구호는 종교인들이 이제 세금을 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국산 중고 자가용차도 없는 민중들이었다. 작게는 기십만원, 나아가 일백만원을 받는 봉급자들도 모두 세금을 내고 있는데 벤츠, 케딜락, 비엠더블유 등의 외제차와 국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종교인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법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종교인들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그들 주장의 운동은 대다수 민중들의 동의를 얻어 사회전반에까지 확산 되어가고 있다. 사회운동가들은 정부에 건의서를 올리기도 했다. 조만간 민중들은 국회에까지 종교인의 세금징수법안이 상정되도록 운동을 전개한다고 한다. 만약에 종교인이 세금을 내는 시대가 오고 만다면, 불우한 중생은 외면하고 사찰에 거액들여 음악회의 굿판을 벌이고,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는 등 졸부적 작태를 마음껏 보여준 승려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할 것이다. 이들의 졸부적 작태는 세금을 내려고 몸부림을 치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졸부적 작태를 부리는 승려들의 행위로 저 고려말에 부패승려들 탓에 수행전법에 전념하던 승려들이 부패승려들과 동타지옥을 하듯이 하여 이조 5백년을 고생하는 길의 시작이 되듯이, 무소유사상을 실천하는 수행자에게도 세금징수의 불똥은 튀고 말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민중들은 승려들은 검소한 생활속에서 중생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것을 희망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세금을 못내서 몸부림을 치는 승려들이 나날히 늘어나는 한국불교의 현실이라면, 고려말의 망불(亡佛)행위는 조만간 재연해질 것이고, 이조의 배불사상의 망령은 또한번 한국불교를 복진타락의 길로 인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불교에는 민중이 희망적으로 보는 승려들이 많다. 각처 각분야에서 중생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수행자들이 부지기수인 것이다. 특히 수많은 산사에서 등산객들에게 점심을 무료제공을 하고 있는 소식이 있다. 고봉정상에 땀흘려 올라온 등산객에게 승려가 시원한 물과 한 끼의 무료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은 휼륭한 포교이다. 종로 탑골 공원의 원각사의 주지 보리스님은 매일 200명에서 250여명의 노숙자 및 노인들에게 점심공양을 무료로 보시하고 있다. 필자가 원각사를 방문했을 때, 보리스님과 뜻을 함께하여 원력을 세운 보살님들은 정근염불속에 배식을 하고 있었다. 중생들은 부처님이 지켜보시는 법당에서 공양을 하고 있었다. 무료식사를 맛있게 먹는 장소이니 부처님은 분명 기뻐하실 것이다. 원각사는 가난한 절이다. 보리스님과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으로 쌀을 모와 중생들의 무료급식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중생이 없는 불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사찰이 원각사와 같이 불우하고 소외된 중생을 위해 자비를 실천할 때 부처님은 영원히 이 땅에 살아계시고, 민중은 부처님을 신앙할 것이다. 배불사상은 이조초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중생의 사표여야할 수행자들이 부패했을 때, 민중은 부패한 수행자를 존중하지 않고, 타도되어야 할 도적으로 보는 것이 배불사상이다. 민중은 승려가 외제차를 탄다고 해서 절대 존경하지 않는다. 사찰이 본연의 적멸의 수행도량을 망각하고 거액을 들여 굿판을 벌인다 해서 절대 존경하지 않는다. 민중은 부처님을 너무 잘알고 있다. 부처님은 누구이신가. 영원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왕자의 지위와 황금의 재물과 미희(美姬)들과 풍악이 울리는 왕궁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가난한 구도자로써 일생을 사신분이다. 부처님은 도를 깨닫고 난 후 일생을 탁발하여 끼니를 때우면서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헌신봉사를 하시고, 마침내 길가의 사라쌍수 나무밑에서 열반에 드신분이다. 부처님을 닮으려는 수행자는 여법한 수행자의 향기로써 중생을 제접해야 할 것이다.저자거리의 굿판이나 축재(蓄財)를 상징하는 외제 승용차 등으로 중생을 제접하려 해서는 안된다. 수행자가 수행자 다웁지 못할 때 배불의 겁난(劫亂)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각골명심(刻骨銘心)해야 할 것이다. 수행자는 오직 무소유의 삶을 사신 부처님을 닮는 인생을 살아야 마땅할 것이다. ------------------------------------------------------------------------------ (www.jabg.net) e-mail: bubchl@hotmail.com ⓒ 중앙불교신문(www.jabg.net), 전재 및 재배포 허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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