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슴 한켠을 비우면 사랑 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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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9년 02월 13일 (15:52) | 조회수 | 조회수 : 3,051 |
가슴 한켠을 비우면 사랑 할 수 있다. 아침이면 절 도량이 아닌 앞 행길을 쓸고 있다. 바람에 날려 뒹구는 낙엽들과 휴지들. 때론 개똥이 태평스레 손길을 기다리지만 쓸 때면 마음이 평안하다. 내 마음의 번뇌를 쓸어내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로 전쟁보다 더 많은 인원이 죽어가고 이재민이 생겨난다. 예전의 자연재해는 인간의 영역 밖이라 생각하고 순응하며 받아들였는데, 지금의 자연재해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라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듯하다. 과학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없다하더라고 전해지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나간 일본 고베의 지진, 스리랑카의 해일, 태국의 쓰나미등 엄청난 인명피해를 내고 간 흔적들은 아직도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크고 작은 재해들이 끊임없이 지구촌을 뒤흔들며 공포로 떨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중국 쓰촨성 지진과 미얀마 싸이클론나르기스로 인한 인명피해와 이재민들은 우리들을 다시금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인류의 눈부신 발전이 화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앞을 향한 발전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필요악이다. 알게 모르게 편의에 의해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또한 우리의 숨을 죄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 일상의 평화로움으로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지구촌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 남겨진 우리들이 할 일이다. 이제는 이웃의 일들이 나의 일이 되어야지만이 복구가 조속히 이루어 질 수 있다. 남을 돕는 것도 모두 때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때를 맞추어 보시하는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멀리서 오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요,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며, 병든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고, 흉년이 들었을 때 베푸는 것이며, 햇곡식과 햇과일을 먼저 수행자에게 베푸는 것이다.또한 때를 맞추어 지혜롭게 보시하고 믿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서는 기쁨을 누리고 죽어서는 천상의 덕을 갖추느니라. 잊지 않고 때를 따라 널리 베풀면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듯 부족함없는 복락이 그를 따르니 태어나는 곳곳마다 부귀하리라. 보시는 온갖 선행의 으뜸이 되어 끝내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나니 억금을 보시하고도 딴 생각 갖지 않으면 기쁨은 더욱 더욱 늘어가리라.(「증일아함경」 제 24;선취품12)라고 말씀하셨다.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 하지 않는가? 보시한 사람은 복을 얻고 마음이 자비로운 사람에게는 원수가 없다는 말이다. 성경에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 가족이 즐거워 할 지니라.말씀하셨고, 하나님, 답변 없으시다고 말하지 말라. 하지 않았는가. 종교를 초월하여 베푸는 모든 이들에게는 그 공덕이 설령 눈에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본인들에게 돌아감은 의심할 여지가 없거니와 굳이 내게 좋고 나쁨을 헤아리지 않을 때 진정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절에서는 방관자가 아닌 절망하는 그들과 한 마음이 되기 위하여 그들을 위한 방법으로 중국 지진과 미얀마 해일로 인한 사망자를 위를 천도재를 지난주 정성스럽게 지내드렸다. 물질로나 몸으로 돕는 방법도 있지만 정신적인 것으로 그들이 미쳐 정신없어 챙겨주지 못할 영혼들을 달래어 극락왕생 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고, 살아있는 이들에게는 안정을 주기위한 기도로서 모든 신도님들이 뜻을 한데 모았다. 또한 토요일과 일요일날 신도님들이 내신 불전은 모두 성금으로 기부하고, 일년전 푼푼이 힘겨운 생활 가운데 모은 것이라며 작은 복주머니에 10센따보, 25센따보, 50센따보, 2페소,20페소등의 지폐들을 모아서 가지고 온 것을 의미 있게 쓰려고 쓰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그분들의 마음을 함께 담아 전하기로 하였다. 물론 금액으로 보면 아주 작고 미미하겠지만 그 어느 누구의 큰 돈 보다도 의미 있는 돈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 동안은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마음으로나마 한발 다가서기 위하여 밥을 먹되 속을 80%만 채우고 나머지 20%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채우라고 당부하였다. 모두가 지키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기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으리라 믿는다. 더블어 수행자인 나도 동참의 의미로 사흘을 물만 마시며 지냈지만 그들의 고통을 어찌 안다 할 수 있겠는가. 먹을 수 있는데 참는 것은 행복이다. 먹을 것이 없어 못 먹는 것이 고통이지. 먹고, 자고, 입고, 씻고 하는 기본적인 모두가 갖춰지지 않은 것을 한번쯤 상상해보라. 우리 모두가 가슴 한 켠 욕심의 자리를 비우면 사랑할 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무슨 일이든 미루지 말고 알았을 때 실천하길 바란다. 먼저 그들을 위한 진실 된 기도부터 하면 좋겠다. 이로 인한 행복한 미소가 당신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려사 길상스님 합장 부에노스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종교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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