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에 귀의하옵고, 다른 사이트에 올려진 글을 전달합니다.
[전달글1] 세계는 무엇이며, 어떠한 세계가 있을까요?
눈의 알음알이(안식)에 의해 알아지는 형상(색)의 세계가 있습니다. 귀의 알음알이(이식)에 의해 알아지는 소리의 세계가 있습니다. 코의 알음알이(비식)에 의해 알아지는 냄새의 세계가 있습니다. 혀의 알음알이(설식)에 의해 알아지는 맛의 세계가 있습니다. 몸의 알음알이(신식)에 의해 알아지는 감촉(지대, 화대, 풍대)의 세계가 있습니다. 마노의 알음알이(의식)에 의해 알아지는 법의 세계가 있습니다.
법의 세계를 '실재법의 세계'와 '개념법의 세계'로 나누어 볼 때, 도에 이른 성자들은 형상(색)의 세계, 소리의 세계, 냄새의 세계, 맛의 세계, 감촉의 세계, 실재법의 세계 및 개념법의 세계를 구분하여 인식할 수 있지만, 저를 비롯한 중생들은 상기 세계들을 구분하여 인식하지 못하고 상기 세계들을 적절하게 통합하여 '개념법의 세계'로만 거의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아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은, 내가 있으며,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냄새맡고, 내가 맛보고, 내가 감촉을 느끼며, 내가 법을 안다고 인식하면서 세계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즉, 형상(색)은 단지 형상(색)일 뿐이며, 소리는 단지 소리일 뿐이며, 냄새는 단지 냄새일 뿐이며, 맛은 단지 맛일 뿐이며, 감촉은 단지 감촉일 뿐이며, 법(실재법 및 개념법)은 단지 법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고 세계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PS)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개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은 안식에 의해 알아지는 형상이 의식(마노의 알음알이)에 의해 연속적으로 결합되어 개념화된 개념입니다.
실재로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열반을 제외한 모든 실재법들은 조건에 의해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다음 순간의 조건이 되면서 순간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실재는 어디에서 오는 것도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조건에 따라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개념만이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입니다.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은 개념이다'라는 것을 이해하시겠는지요?
실재는 어디 있다가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건에 따라 순간적으로 생멸하는 실재의 연속을 자아 등으로 개념화하여 실재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달글2] 개념에 대한 올바른 견해
저가 앞에 올린 글에서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은 개념이다' 등의 글을 게시한 것에 대해, '개념을 가지지 말라'고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실 것 같아 조금 적습니다.
개념은 필요한 것이며 '의문인식과정'을 통해 조건에 따라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도'에 이르기 위한 개념도 '도'를 전하기 위한 개념도 필요한 것입니다. '개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지, '개념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님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개념뿐만 아니라 실재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가정이나 가족, 회사, 나라 등의 개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지, 가정이나 가족, 회사, 나라 등의 개념을 버리고 내팽개치라는 말이 아님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자아개념'은 반드시 버려야 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자아개념이 있는 한, 다른 개념을 비롯하여 실재에도 집착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도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아개념을 버릴 때에는 버리는 사람이나 영혼이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버리는 한마음이나 주인공이나 진아(참자아)나 영혼 등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자아개념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즉, 부처님께서 설하신 조건법(12 연기 및 24 조건)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한 것입니다. 청정도론 제17장에서는 12연기가 재생연결과 삶의 전개과정에서 어떻게 조건이 되는지를 24조건과 결합하여 기본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으므로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에 이르지 않고 언제까지나 윤회하면서 고(괴로움)를 겪고 싶으시다면 자아개념을 버리지 않아도 좋습니다. 말리지 않겠습니다. 무수한 괴로움을 겪은 후에야 '자아개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의사 소통을 위해 '나' 등의 말을 하는 것과, 자아개념을 가지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자아개념'을 버렸다면, '나' 등의 말을 하는 것이 '도에 이르는 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수다원의 도에 이르기 전에는 '자아개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 '자아개념'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수다원의 도에 이르게 되면, 잠재된 '자아개념'이 완전히 뿌리 뽑히게 되어 '자아개념'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므로 '자아개념'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불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