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불교교육연수 감상문--효탄스님 한국불교,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강원교직자 대만불교 교육연수을 다녀와서
조계종 교육원은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대만에서 ''전국 강원(승가대학) 교직자 연수''를 실시했다. 연수에 참여했던 효탄 스님(운문사 승가대학 강사)이 소감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무상(無常)이다. 때문에 더욱 더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것인가?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마친 이틀 뒤 오후 1시, 숨도 돌릴 틈 없이 3박 4일의 불광산사-중태선사-법고산사 교육연수를 위해 대만 행 비행기를 탔다. 뒷정리도 안 된 채 매우 어수선한 마음이었으나 가오슝(高雄)공항에 내리자 그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14곳 강원 60여명의 비구ㆍ비구니 교직자 스님들이 버스를 두 대로 나누어 타고 시간 반 만에 남부의 불광산사에 도착, 바로 대웅전에서 간단한 양측 대표단의 인사말과 함께 입재식을 가졌다. 불광산사는 16년 전에 들른 곳이라 낯설지 않았으나 연수인지라 조금은 긴장되었다.
대웅전 앞 화려하게 장엄한 부처님오신날 행사 관욕대를 뒤로 하고 기념 촬영 후, 저녁공양과 시설견학 후 가진 간담회는 밤 11시가 넘도록 진행되었다. 불광산사의 명성은 익히 들은 바였다. 40여년의 짧은 세월에 이러한 대형 불사를 이룩한 것은 기적에 가까울 지경이다. 그러나 그 답은 “교육이다”라고 도감원장 훼이추안(慧轉)스님은 명확히 말한다.
불광산사의 처음 시작은 ‘불학원(佛學院, 우리의 전통강원)’에서부터였다. 이후 개산조 싱윈(星雲) 대사의 가르침에 입각해 교육불사를 통한 인재양성, 문화불사를 통한 불법의 포교, 자선활동을 통한 사회복리 증진, 수행프로그램을 통한 마음의 정화를 병행하였던 것이다. 불학원 교과목 중 눈에 띄는 것은 세부적 교재를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한국 교과목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임제종맥을 잇고 있으나, 조사어록이 ‘싱윈 대사 어록’으로 대치된 느낌이었다. 이것은 중국 본토를 뒤로 하고 밀려 나온(?) 대만 불교의 특징이겠으나, 한편 같은 시대에 살아 움직이는 큰 선지식이 있다는 것은 이들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1967년 개창된 불광산사의 사세(寺勢)는 대만 내 70여 곳의 사찰과 라디오, 케이블 TV, 신문을 운영하고 세계 5대양 6대주에 200여 곳의 사찰을 관할하며 불교를 전하고 있다. 이처럼 40년 밖에 안 된 짧은 역사를 가지면서도 불교의 사회화ㆍ국제화에 성공한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불교의 교육체계가 대만불교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승가교육이 글로벌화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은 불학원 안에 이미 랩(Lab)실을 갖추어 놓고 있으며 10단계의 외국어 교육을 필수로 시키고 있었다. 또한 도서관 시설도 장서와 규모는 물론이고, 학인들을 위해 좌석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었다.
또한 대만을 다니다 보면 많은 재가자들이 사미승들과 똑같이 가사ㆍ장삼을 수한 채 수업 및 의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비구 비구니의 비율이 1: 10~12, 정도이다 보니, 위에 비구스님이 있고 피라미드식으로 많은 비구니가 밑에 있는 모양세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겉모습일 뿐, 비구ㆍ비구니(男女) 평등, 재가자ㆍ출가자(승속) 평등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평등의 정신이 재가자의 자연스러운 출가를 유도하고 비구ㆍ비구니 및 출ㆍ재가의 융화와 존경을 이끌어내고 능력별 평등을 바탕으로 한 인재불사와 조직력이 대만불교를 국제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다음날 새벽예불에 이어 4000여명이 함께 공양할 수 있는 운거루와 남녀 불학원 견학시간을 갖고 중부의 중대선사로 바삐 향했다.
중태선사는 안내자의 말대로 “말이 필요 없고 눈으로 보시라”고 했듯이 불광산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찰이었다.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는 재원이 투여된 36층, 115m, 연건평만도 2만5000평이 넘는 현대식 대형 사찰에 1600명이 수행하고 있었으며, 우리들이 늘 갖고 있는 사찰 건축의 전형을 깨는 획기적 중앙집중식 건축물이었다. 그러니 자연 입이 벌어질 수밖에…. 그리고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과 시설물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도시락으로 준비된 점심공양 후 간담회에서 부주지 지엔다(見達) 스님은 중태선사 역시 그 발전의 모태를 “교육-인재불사에 있다”고 강조한다. 교육불사를 바탕으로, 아니 교육이 중심이 되어 오늘의 중태선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사찰운영은 어떻게 하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간단히 “‘창건주인 외이지에(惟覺) 스님의 유지에 따르는 신도들의 순수한 보시에 의한다”고 잘라 말해 우리는 입을 다물기도 하였다.
일행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36층까지 엘리베이터를 바꾸어 타가며 올라갔으며, 건물 안 목탑을 참배하고 마지막 층에서는 공명을 경험하는 둥근 원안에 서기도 하였다. 10년 전 설립된 중대 불학원은 학원부와 연구소가 있고 불학원은 사미ㆍ사미니로 나뉘어져 교육하고 있으며 2년 과정의 대학부와 3년 과정의 고급부로 분리돼 있다. 연구소는 논문을 작성하고 논문이 통과되면 석사학위를 받는다. 임제종 계통의 선불교를 중심으로 교세를 펴고 있는 중대선사는 미국에 7곳의 선 센터를 개설하고, 홍콩, 방콕, 호주 등 전 세계에 100여 곳의 선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900여명이 기숙사에서 생활 할 수 있는 초ㆍ중등학교도 운영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기공식도 가졌다 한다.
중태선사에서 4시간 타이베이(臺北)으로 이동하여 숙박하고 다음 날 세 번째로 찾은 곳은 북부의 진산 법고산사였다. 이곳 역시 바쁜 와중에도 손님맞이 준비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법고산사는 셩옌(聖嚴) 대사의 원력 아래 ‘세계불교교육단지’를 지향하며 8만평의 부지에 사찰 자체를 대학캠퍼스처럼 꾸며 놓았다.
법고산사의 첫 느낌은 마치 잘 계획된 완벽한 연구 단지를 보는 것 같은 질서 정연함ㆍ차분함이었다. 법고산사는 중화불화연구소와 법고산산 승가대학 안에 불학원, 승려양성반, 선학원이 개원되어 있으며 정부로부터 인가받은 석ㆍ박사과정이 개설되어 있었다. 불학원은 4년제이며 출ㆍ재가자 모두에게 입학이 허용되어 있으며, 입학 1년 후 자연히 출가를 하게 되는 경우는 90% 이상에 이른다 한다. 또한 6년 과정의 선학원은 심화된 선 수행을 하는데 출ㆍ재가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진지한 질의응답이 오가는 도중 대만 측에서 한국강원의 최근 소식에도 정통함에 또한번 놀랐다. 법고산사에서는 중국식 점심 발우공양도 함께 하였는데 단 위에 높게 앉은 좌장 훼이민(慧敏) 스님과 그 아래 질서 정연한 공양은 인상적이었으며, 모처럼 간단하면서도 향료를 조금 덜 쓴(?) 깔끔한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눈과 귀는 온통 집중한 채 그렇게 약간의 흥분과 긴장 속에서 짧은 일정을 보냈다. 바쁜 연수 여정 속에서 나름대로 전통과 현대화에 조화를 이룩해낸 대만불교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개산조(開山祖) 중심의 불교-개산조의 원력과 영도력에 의해 승가교육, 사회교육, 신도교육을 확립, 융화와 존경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 내에 대 가람을 일구어 내었다. 2, 교육 없이 수행ㆍ포교는 없다는 기치 아래 출발, 인재불사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불학원은 중앙정부의 인가획득을 추진하고 있다. 3, 중앙집중식 건축과 운영- 비효율적인 동선거리를 없애고 건물을 현대화ㆍ복층화 함으로서 집중성을 한층 높였다. 4, 선교일치, 남녀평등, 승속평등의 실천- 선과 교의 수행을 한 도량 내에서 하며 남녀승속 차별을 없앰으로써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 내고 있다. 5, 불교의 사회화ㆍ세계화의 역점-결집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대사회적 봉사의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도모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만 불교의 저력은 ‘철저한 교육을 통한 융화와-결집력(조직력)’이었다. 찜통더위 속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대만불교 교육현장을 들러본 강원교직자 스님들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전통과 현대교육의 조화’라는 화두를 들고 돌아왔다. 부디 이러한 충격과 문제의식이 흐지부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이번 연수를 마련해주신 교육원 종단관계자 여러분, 통역을 맡아준 조소영씨, 강원교직자 임원스님들, 그리고 대만 측 불광산사-중태선사-법고산사에 가슴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 글을 접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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