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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경허집 The Collected Writings of Gyeongheo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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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09년 02월 13일 (14:28)조회수조회수 : 3,006

영문 경허집 The Collected Writings of Gyeongheo 출간


한국근대불교 중흥조, 세계를 향해 사자후를 포효하다!
경허집 영문판 출간



1. 대한불교 조계종은 한국 근대불교의 중흥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경허선사의 법문과 선시를 담은 경허집 영문판을 출간하였다. 이번 번역 사업은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있어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며 앞으로 있을 한국사상서 번역사업의 효시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 번역사업은 문화관광부의 한국문화체험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1년간의 노력을 기울여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2. 경허집 영문판은 통도사 극락선원 명정 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경허집」을 모본으로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영의 명예교수가 번역을 맡고, 미국 미시건대 한국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매티 베게하우프트와 미국 UC버클리 종교학 박사출신으로 현재 해인사 승가대학장 소임을 맡고 있는 법진 스님이 감수를 맡아 진행되었다.

3. 혼란의 시기였던 19세기 말, 어떤 경계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한 삶을 살았던 경허선사(1846~1912)는 선(禪)을 걸망에 짊어지고 나라 구석구석을 만행하며 깨달음에 목말라 하던 구도자들에게 새로운 길과 희망을 제시하였으며 그 와중에 벌어졌던 선객으로서의 일화, 혹은 수월, 혜월, 만공, 한암 등 제자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그럼에도 경허스님의 탁월한 사상과 행장이 지금까지 국내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번 출간을 계기로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4. 본 경허집 영문판은 각각 250쪽이 넘는 산문집과 시집의 2권 1질로 구성되어 있다. 시집의 경우는, 5언절구, 7언절구 등 다양한 형식의 한시와 오도송, 행장 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산문집은 법문, 서문, 스님들과의 편지, 선사들의 행장 등이 실려있어 경허스님의 사상과 당시 불교계의 정서를 자세히 소개하고있다.

5. 제작된 책은 전 세계 불교단체와 해외 사찰에 우선 배포될 예정이며, 추후 해외시장의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이로서 조계종에서는 2년 전 번역 출간했던 백운화상의 「직지」(영문명 Jikji), 금년 3월 출간된, 한국불교를 빛낸 25분의 선사행장을 소개한 「선사행장」(영문명 The Great Seon Masters of Korea), 이번에 개정판이 나오는 한국불교 가이드북인 「What is Korean Buddhism?」등을 연속 출간하게되어 한국불교의 국제화에 큰 동력을 갖추게 되었다.

* 별첨: 조계종 영문번역책자 소개서, 표지사진
이 보도자료에 대한 문의 사항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국제팀
(☏02-2011-1823)으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근대불교 중흥조, 세계를 향해 사자후를 포효하다!
- 충남대 영문학과 박영의 명예교수의 심혈을 기울인 번역으로 법문과 시집 별도로 출간


불교 신도라면 혹은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19세기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한국불교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 일으켰던 경허선사(1846~1912)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어떤 경계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한 삶을 살았던 경허선사는 선(禪)을 걸망에 짊어지고 온 나라를 만행하며 깨달음에 목말라 하던 구도자들에게 길을 제시하곤 했다. 그 와중에 벌어졌던 경허선사의 일화, 혹은 수월, 혜월, 만공, 한암 등 제자들과의 대화와 일화는 인구에 회자되어 대자유인으로서의 그의 명성을 드높이곤 했다. 오늘날의 조계종이 이처럼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노력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선풍을 다시 일으켜 세운 곳이 해인사, 송광사 등 한국의 대표적인 사찰 거의 모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70년대 이후 송광사 구산 스님, 화계사의 숭산 스님을 통해 한국불교를 배우고자 했던 수많은 외국인 제자들에게 경허선사가 했던 법문과 19세기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던 그의 시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물론 구산 스님과 숭산 스님의 법문 그리고 보조 지눌어록, 태고 보우어록, 청허스님의 선가귀감 등 몇몇 대표적인 한국불교의 텍스트들은 직계 제자들 혹은 한국불교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어 조금이나마 한국불교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지만, 한국불교의 근대를 대표하는 경허선사의 법문과 시집은 오랫동안 번역이 시도되었을 뿐 세상에 나와 빛을 보진 못했다. 한문으로 된 텍스트 자체의 어려움과 좋은 한글 번역물 자체가 없어서 숭산 스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여러 외국인 번역자들이 번역을 진척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산적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지난 몇 년간 진행되어온 한국불교 텍스트의 영문화 작업의 일환으로 경허집의 번역에 착수, 1년여의 작업시간을 거쳐 선사의 어록과 시집을 내놓게 됐다. 문화관광부의 지원 하에 통도사 극락선원 명정 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경허집」을 모본으로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영의 명예교수가 번역을 맡고, 미국 미시건대 한국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매티 베게하우프트와 미국 UC버클리 종교학 박사출신으로 현재 해인사 강주 소임을 맡고 있는 법진 스님이 감수를 맡아 각각 250페이지가 넘는 산문집과 시집을 각각 출판하게 된 것이다.

이 작업과정에서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철주야 번역에 매달린 박영의 교수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책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한국의 “스즈키 다이세쯔(일본 불교를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번역가 겸 학자. 그의 번역을 통해 선의 일본표기인 Zen이 세계화됨)”가 되겠다는 원을 세운 박영의 교수를 통해 경허 선사의 가르침은 온전히 세상에 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영문 경허집 「The Collected Writings of Gyeongheo」은 법문, 서간문, 시가 한 권으로 정리되어 있던 한글 원문과 달리 산문집과 시집으로 각각 나뉘어 제작되었다. 경허 선사의 뛰어난 선시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좀 더 읽기 쉬도록 줄 간격과 여백을 넉넉히 줌으로써 산문집 역시 마치 시집을 읽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편집되었다.

제작된 책은 우선 전 세계 불교단체와 해외 사찰에 무료 공급되며, 차후 해외의 독자들에게도 선보일 예정이다. 담당부서인 총무원 사회부 국제팀과 편집제작사인 조계종출판사는 2년 전 번역 출간했던 백운화상의 「Jikji」, 이번에 개정판이 나오는 한국불교 가이드북인 「What is Korean Buddhism?」등을 가지고 해외 출판시장에 본격적으로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현재 종단 차원에서 추진 중인 한국불교서적 번역사업인 “전통사상서 번역사업”이 본격화되어 보다 많은 영문서적이 출간되기 전에 해외유통경로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

조계종은 간화선 대중화와 더불어 한국불교 세계화를 모토로 각종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조계종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전법에 나서겠다는 것.
그 한 가운데 이제 경허 선사가 다시 섰다. 19세기 침체되었던 한국불교를 되살린 경허 선사의 원력이 한국불교 세계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세계를 향한 경허 선사의 사자후가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의: 대한불교조계종 출판사 남원근 팀장 (전화 02-733-6390)

서적 소개
출간일: 2007년 4월 4일
판 형: 신국판
길 이: 산문집 271쪽, 시집 254쪽

저자 소개
경허선사(鏡虛禪師) 성우(惺牛) (1846~1912)

청허(淸虛) 휴정선사(休靜禪師, 1520~1604) 이래로 한국 근대 선(禪)의 중흥조로 평가받고 있다 1. 생 애
경허선사가 생존했던 당시는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결국 1910년에는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는 민족적 비애를 맞아야 했던 시대였다. 선사는 1849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아버지 송두옥(宋斗玉)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청계사(淸溪寺)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14세가 되던 해 그 절에 머물게 된 한 유학자에게서 처음으로 글자를 배웠는데, 매일 5, 6장의 글을 능히 외워 재동(才童)으로 칭송받았다. 그해 겨울 선사의 총명함을 아낀 스승 계허에 의해 당시 유명한 동학사(東鶴寺) 만화(萬化) 강백에게 천거되었다. 그에게서 선사는 본격적으로 불교경론뿐만 아니라 유서(儒書)와 노장(老莊) 등의 전적들도 두루 섭렵했다. 23세 때에는 동학사 강원 강사로 추대되어 여러 곳에서 모인 학인(學人)들을 가르쳤다.
젊은 강백으로 이름을 떨치던 경허선사는 34세 때 인생의 결정적 전기를 맞는다. 그해 여름 환속한 계허 스님을 찾아 서울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민가에 머물러 비를 피하려 했으나,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집집마다 내쫓겼다. 할 수 없이 마을 밖 큰 나무 밑에서 밤새도록 죽음의 공포 속에 시달리다, 문득 생사불이(生死不二)의 이치를 그때까지 문자로만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에 구속되지 않고 선사들의 깨달음을 찾아 삼계를 벗어나리라(此生永爲痴呆漢 不爲文字所拘繫 參尋祖道 超出三界)”하며 새롭게 발심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문을 걸어 잠그고 오로지 화두참구에만 전념했다. 용맹정진 하던 3개월째 되던 날, 한 사미승이 물은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의심이 풀리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듬해 봄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깨달은 뒤의 수행인 보림(保任)에 들어가 고된 정진을 하였다. 그 때 자신의 법통에 대해 ‘청허(淸虛)와 환성(喚惺)의 법맥을 이은 용암(龍巖)의 법통을 이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마침내 35세가 되던 6월 선사는 자신이 깨달은 경지를 다음의 ‘오도가(悟道歌)’로 읊었다.

홀연히 콧구멍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忽聞人語無鼻孔
문득 온 우주가 나의 집임을 깨달았네. 頓覺三千是我家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六月燕巖山下路
시골 사람들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 野人無事太平歌

이로부터 경허선사는 20여 년간 천장암과 수덕사를 비롯한 부산 범어사와 해인사 등 영남지방은 물론 송광사와 화엄사 등 호남 일대에 선원을 개설하고, 많은 선승들을 지도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특히 만공 월면(滿空月面), 혜월(慧月), 수월(水月), 한암(漢岩) 스님 등의 전법(傳法) 제자들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근대사를 개척하여 간 많은 선승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법맥과 선풍을 물려받은 이들은 오늘날 한국불교의 중심인 조계종단 형성의 기초를 닦았다.
많은 설법과 불사(佛事)의 증사(證師: 법회의 선악을 관찰하는 법사(法師))로 참가하면서 수많은 일화를 남겼던 경허선사는 60세 때인 1905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경허선사는 머리도 기르고 선비차림을 한 채 평안북도 강계(江界), 함경남도 갑산(甲山) 일대를 떠돌며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지내다, 1912년 4월 25일 그의 나이 67세 때 갑산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한 것으로 나중에 제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다음은 그가 남긴 마지막 임종게이다.
마음달이 외로이 둥그니 心月孤圓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光呑萬像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光境俱忘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復是何物

2. 저 서
오늘날 전저(編著)된 것이다. 경허선사가 열반에 든 지 30년 후인 1942년에 제자 만공(滿空)스님이 모은 자료를 기초로《경허집(鏡虛集)》이 출간되었다. 여기에는 선사의 법어(法語), 서문(序文), 기문(記文), 서간(書簡), 행장(行狀), 영찬(影贊), 시(詩), 가(歌) 등과 더불어 제자 한암스님이 쓴 행장과 만해 한용운(韓龍雲)이 쓴 약보(略譜)가 수록되어 있다.〈법어〉에서는 ‘진흙소의 울음(泥牛吼)’과 우리말로 된 ‘중노릇 하는 법’ 등 주로 그의 사상체계를 알리는 글들이 실려 있으며,〈가〉에서는 선수행의 길과 대중 포교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다. 또〈서문〉과〈기문〉에는 정혜결사의 성격과 취지를 밝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1981년에는《경허법어(鏡虛法語)》가 발행되었는데, 여기에는 종전에 나온《경허집》에 수록되지 못했던 자료를 보충해서 수록해 놓았다. 즉 법어〈금강산유산가(金剛山遊山歌)〉를 비롯한 선송(禪頌) 40여 편과 한암스해지고 있는 경허선사의 글들은 그가 직접 저술하였다기보다는 그의 제자나 후인들에 의해 편님이 찬술한〈선사경허화상행장(禪師鏡虛和尙行狀)〉및 경허선사가 도처에서 남긴 일화(逸話) 38편 등이 증보되어 있다.
그리고 1900년대 초 경허선사가 중국과 한국불교 선문(禪門)에서 중요한 어록과 논(論)을 직접 모아 편저한『선문촬요(禪門撮要)』가 오늘날 선의 지침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3. 사상적 특징
경허선사는 스스로 수행의 모범이 되어 결사(結社)와 폐쇄된 선원의 복원을 통해 전국적으로 선풍(禪風) 진작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선사가 결사를 결성하기 시작한 시기는 54세가 되던 1899년부터였다. 이 결사는 고려 보조스님의 정혜결사(定慧結社)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 결사의 목적은 결국 깨달음〔佛果〕을 이루는 것이었는데, 경허선사가 주도한 결사의 사상적 특징은 정혜를 닦는 가운데서도 도솔천(兜率天)에 상생하기를 서원하도록 하는 현실적 구원사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도(道)를 얻을 수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고통받는 하층계급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이들이 그 서원의 힘으로나마 부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선사의 생각이었다.
경허선사가 활동했던 조선후기에 이르게 되면, 신라후기에서 시작한 이래 면면히 흘러온 선종(禪宗)의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선풍은 거의 끊어져 실참실구(實參實究)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경허선사의 결사로 그러한 선풍이 재흥되었다.
이와 같이 경허선사의 일관된 사상은 선(禪)이다. 그러나 선수행만을 주장하는 편협된 선사는 아니었다. 그는 염불이나 주력 등 기타 불교 교리에 입각한 실천적인 면도 궁극적으로는 대등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선교(禪敎)의 대립보다는 일치를 찾고 있었다.
또 다른 경허선사의 사상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쓴 ‘심우가(尋牛歌)’와 ‘심우송(尋牛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여기서 각자에게 내재된 불성(佛性)의 성숙 발현의 단계를 소를 상징해 풀이하고 있다. 그 당시 여러 형태로 유행했던 목우도(牧牛圖)와는 달리 종래의 10단위의 숫자도 도식적인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또한 흑우(黑牛)가 백우(白牛)로 변하는 과정을 별로 중요시 하지 않고 본래부터 갖춰진 자성(自性) 자리를 강조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바랑을 지고 시장에 놀며 요령을 흔들고 마을에 들어가는 것이 실로 일 마친 사람의 경계여라(荷帒遊市 振鈴入村 寔爲了事漢境界)”라고 하여 중생 속에 들어가 세상 속에 묻혀 남을 이롭게 하는 생활로 일관하는 자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같이 경허선사는 선을 생활화하고 대중화한 선의 혁명가였으며, 불조(佛祖)의 경지를 현실에서 보여준 선의 대성자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법상(法床)에서 행한 설법은 말할 것도 없고 대화나 문답을 통해서도 언제나 선을 선양하였으며, 문자의 표현이나 기이한 행동도 한결같이 선을 겨냥한 방편이요 작용이었던 것이다.

번역자 소개
박영의 교수는 1932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76세다.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 국무성에서 제공하는 풀브라이트장학금을 받고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전북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받았다. 1968년부터 1998년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30년간 충남대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했다.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박사논문인 “호먼 멜빌의 작품에 대한 불교와 동양사상적 연구”를 쓰면서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는 그는 이후 충남대학교 교수불자회(대원회) 회장, 동서문학비교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옛 한국 선사들의 어록을 번역하고 있으며, 불교를 주제로 한 시집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현대불교신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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