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충주불교신문 2009년 부처님오신날 기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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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현종 | ||
등록일 | 2009년 07월 28일 (12:31) | 조회수 | 조회수 : 2,525 |
부처님오신날의 기도와 발원 현종스님(강릉 현덕사주지) 5월2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불기 2553년이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2553년이 되는 해이다. 삭발 염의한 부처님 제자인 우리 같은 수행자들은 이 날이 되면 출가할 당시의 초발심을 견지하며 납의(衲衣)를 여미게 된다. 내가 사는 강원도 강릉 연곡의 소금강산에는 초여름의 신록이 흘러내릴 듯 싱그럽다. 오랜 가뭄 끝에 계곡을 적신 물소리도 제법 소리를 낸다. 이미 지천에 깔린 야생화들은 저마다 의미를 두면서 누가 보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자태를 세상에 내 보인다.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들꽃들을 보면서 우리네 삶도 저들처럼 성실하고 검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곰삭이곤 한다. 그래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존귀한 것이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도 이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는 사바세계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미 수억겁 동안 선업을 쌓으시면서 깨달음을 얻으셨지만 말이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비바시 보살은 세상에 날 때 오른쪽 옆구리로 나와 생각을 오로지해 어지럽지 않았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와 땅에 떨어지자 일곱 걸음(七步)을 걸었는데 아무도 부축하는 사람도 없었다. 두루 사방을 둘러보고 손을 들어 ‘천상과 천하에서 오직 내가 가장 존귀하다.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제도하려 하노라’(天上天下唯我爲尊 要度衆生生老病死)고 외쳤다. 이것이 그의 공통된 법이니라.” <한역대본경> “그가 태어날 때 수미산이 솟아났고/ 대지는 흔들려 바람에 밀려가는 배와 같았으며/ 구름없는 하늘에는 전당향 그윽하게/ 청색, 적색 수련 꽃이 비와 같이 쏟아졌다””<불소행찬>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최초로 하신 말씀은 “하늘과 땅 위에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 중생의 모든 괴로움, 그것을 내가 편안케 하리라”라는 말이었다. 이 최초의 선언은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 존엄성을 말살하는 그 어떤 것을 배격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다. 이 경건한 진리에 대해 부처님은 도장을 찍듯이 선언한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당시 지배계층이 숭상하고 있던 브라만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부처님의 탄생 당시 사회는 브라만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베다경전을 절대적인 권위로 이용해 사성계급을 제도화했다. 그래서 태어남에 의해 사제, 왕 혹은 무사, 평민과 천민으로 인간을 구별 지어 인간의 존엄성은 확립되지 못했다. 이 사성계급에 의한 구별은 인간차별로 이어지고, 천민을 비천하게 취급하여 종교의식에 조차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사성계급제도를 거부하셨다. 출생에 의해 사람이 존귀해지거나 비천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는 자신의 행위에 따라 결정될 뿐이라고 하여 바르고 고귀한 행위를 강조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평등사상은 생명존엄성에 기반을 두며, 인간만이 아니라 작은 미물에 이르는 모든 중생에게까지 적용된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의 오롯한 가르침은 2500여년이 넘도록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탄생게에 깔려 있는 가르침의 참 의미는 ‘존재의 상의상관성’을 설파하는 연기법(緣起法)과 무관하지 않다. 연기법이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 연관 성을 나타내는 삶의 근원적 원리다. 상대방이 괴로우면 나도 괴롭고, 상대방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자연환경이 오염되면 인간도 오염되고, 생명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환경과 생명이 살아나면 인간도 건강하게 살아난다. 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연관성이 연기법의 기본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존재했던 진리이고 이 땅을 떠난 지 2500여년이 넘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다. 연기법의 이런 의미를 음미해 보면 모든 존재에 대한 경의와 공경의 태도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경은 ‘나’라는 존재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한 웃어른들을 올려다보는 것이요, 내 마음이 위로 향하는 행이다. 이런 연기의 원리를 모르면 일상의 삶에서 남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나’를 여기에 있게 한 근원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모든 존재가 연관돼 있는 ‘연기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고 그때는 자연스럽게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공경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나이 적은 자가 많은 자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경은 신분, 나이, 계급 및 서열의 고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서로에게 해야 한다. 예절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서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웃어른이란, 나이만 많은 거만한 어른이 아니라 자비하고 지혜로우며 인자한 마음을 가진 이를 말한다. 우리 가정이나 사회에 갈등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서로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무지 남의 고통, 남의 처지를 이해해 줄 줄을 모른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남을 무시하고 비난하며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한다. 모든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관계 속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를 쉽고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공경이며 감사이다. 즉 공경은 만행의 근본이며, 인간관계, 개인의 성장, 자연과의 친화는 바로 감사에서 시작된다. 감사하는 마음은 공경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부처님과 부모님을 모시듯, 소중한 친구를 대하듯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할 수 없고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공경하게 된다. 이처럼 내가 지금 여기에 있게 한 모든 분들을 공경하고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연기적인 삶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연기법을 실천하게 되면, 자연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공경하고 감사할 대상들로 가득함을 깨닫게 된다. 내 가족, 이웃과 직장동료 등 나와 인연맺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들이 모두 고맙고 공경해야 할 대상임을 알게 된다. 또한 물과 공기와 태양도 산과 나무, 강과 들녘도 나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생태계 덕분에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연기법을 공간적 관점에서 보면, 동시대의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공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더불어 살면, 삶은 항상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강릉의 산골짜기에 절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연기법을 실천하기 위해 시작한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동.식물 천도재’다. 산업화사회를 살면서 우리 인간의 편리함과 이기심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동.식물들을 위한 인간이 참회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매년 개산일이 되면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강원도 산골 사찰에 와서 억울하게 희생된 동.식물들의 원혼을 천도하며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한다. 이 조그마한 실천행이 ‘나와 이웃, 세상이 하나의 그물망처럼 연관돼 있다’는 연기법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산하대지는 내 몸과 무관하지 않다. 내 몸은 결국 산하대지로 환원되며 산하대지는 바로 내 몸임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 어찌 남의 것을 대하듯 마구 뚫고 부수고 해칠 수 있단 말인가! 개발과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수백만 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해 온 산을 뚫고 부수어 바다의 갯벌을 막는다. 갯벌 속의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간다. 이 세상은 더불어 살아야 참으로 살맛나는 환희와 기쁨의 세상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는 것이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인류가 진작부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이 연기의 진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오존층이 파괴되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온 우리는 100년을 못사는 아주 유한한 삶의 시간을 가진 존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불완전한 존재다. 어느 인연으로는 반드시 왔겠지만 그 근원을 모르고 왔다가 가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고 보면 참으로 허망하기 그지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온 것이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서로 연관돼 살아가는 이웃과 따뜻한 온정을 나누며 착한 업(業)을 쌓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 곱게 피어나는 연꽃 등을 바라보며 항상 공경과 감사 그리고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해야 하는 연기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또한 유한한 이 땅의 삶에서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이웃이 없도록 행동하고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보살행을 하겠다고 부처님 전에 발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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