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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상 (중부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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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7년 01월 31일 (20:05)조회수조회수 : 2,443
 무상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계절은 벌써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강릉 현덕사가 위치한 오대산 자락도 단풍잎은 붉어지고 나뭇가지는 하나 둘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다. 마을 이곳저곳 큰 키로 서 있는 감나무는 잎을 모두 벗어던지고 주홍빛 감만 매달고 있는 모습이 가을을 흠뻑 느끼게 한다.



논에서는 나락을 수확하고 있고, 어느 밭에서는 깨를 터는지 고소한 깨 냄새가 코끝을 파고든다. 예전처럼 온 들녘에 모여 함께 봄부터 정성들여 가꾸어온 작물들을 수확하며, 빙그레 둘러 앉아 새참과 함께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키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아마도 산에는 나무들이 잎을 모두 털어내고 들에는 모든 작물들이 베어지면 곧 겨울이 오고 눈도 내릴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계절의 무상함을 많이 느낄 것이다. 아니 이런 자연의 변화를 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더 많이 느낄지도 모르겠다.



무상(無常)이라는 말은 “항상하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변하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가을에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것도 농부들이 봄부터 정성들여 싹을 틔우고 그 작물들은 뜨거운 태양빛과 비와 바람을 맞으며 하루하루 매일 변하며 자란 덕분일 것이다. 산에 나무들도 봄에 잎을 내어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엔 씨앗을 땅에 흩뿌리고는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고 다시 봄에 새 잎을 내기 위해 옷을 다 벗어버리고 겨울을 준비한다. 이런 자연의 변화 덕에 우리 인간은 그 자연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자연과 마찬가지다. 세상에 나온 날부터 같은 날을 단 하루도 살지 않는다. 어려서는 부모님의 보호아래 성장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공부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간다. 이러는 이유는 우리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변화시키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비록 오늘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 힘듦을 이겨내면 내일은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밝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매일 매일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살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삶을 무상(無常)하다고 표현한다.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병든 사람은 꾸준히 운동하고 치료하면 건강해 질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현실을 이겨내고 행복해 질 수 있다. 반대로 부자인 사람은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웃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고 정당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고, 건강한 사람은 평소에 더욱 몸 관리를 철저히 해야 계속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듯 각자가 처한 현실은 다르지만 자기 삶에 애정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삶을 마주하면 모두가 희망이 있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을 보면 안타까움이 많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불합리한 사회시스템 때문에 그 가난에서 못 벗어나고 부자들은 갖은 편법과 권력을 이용해 그 부를 부당한 방법으로 세습한다. 대학 등록금 걱정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반면에 권력과 부를 앞세워 부당하게 대학에 입학하고 학교에는 나오지도 않으면서 학점은 꼬박 챙기는 엄청난 일도 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를 채우고 갖은 편법으로 권력을 손에 쥔 이들은 마치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수많은 동서고금의 역사에 비추어 보더라도 정정당당하지 못한 부와 권력은 필히 패가망신하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권불 십년, 화무십일홍 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다르다. 각자 처한 현실도 다르고 가진 것도 다르다. 그러나 누구나 공정하고 정당한 기회는 똑같이 주어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도 없고 항상 갈등과 반목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모든 경쟁자들에게 같은 기회가 부여되고 공정한 심판이 이루어질 때 승자는 패자에게 축하 받고 패자는 승자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 공정한 기회와 판정이 없다면 승자든 패자든 그 승부에 승복하지 않고 보는 이들에게도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많이 가진 사람이든 적게 가진 사람이든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것이 우리가 후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중에 하나일 것이다.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금수저, 흙수저 논쟁 없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들의 책무일 것이다.



“인생은 무상하다”라는 말이 허무적이고 자조적인 말이 아니라 내 삶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긍정적이고 희망찬 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현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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