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해서 좋은 절’ 꿈꾸며
1999년 창건해 20돌 맞아
‘동식물 천도재’ 봉행하며
생명존중 실천 ‘환경본찰’
‘아빠 어디가’ 예능방송으로
템플스테이 알리는데 기여
저소득층 위한 무료 49재도
강릉 현덕사는 오대산 줄기인 만월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청정도량이다. 현 주지 현종스님이 농가를 사들인 후 부처님 도량으로 일궈 1999년 7월10일 창건했다. 현덕사는 작아서 좋은 절, 소박해서 좋은 절, 가장 한국적인 절을 꿈꾼다.
‘최고’ ‘최대’ ‘최초’ ‘원조’ 등의 수식어가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심지어 불교계에서도 ‘국내 최대’, ‘세계 최대’를 앞세우며 대작불사를 펼치는 여느 사찰과는 결이 다르다. 그저 예쁜 마음씨 하나만으로 와서 쉬었다 가고, 예쁜 심신으로 찾아와 기도할 수 있는 도량이 개산 20주년을 맞은 현덕사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소금강 옆 왕복 4차선 도로를 달리다 2km 남짓한 좁은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현덕사를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야생꽃과 들풀을 보고 경쟁하듯 지저귀는 온갖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걷다보면 20분 남짓한 시간은 금방 지나가기 마련이다. 2017년 12월 KTX 경강선 개통으로 인해 서울 청량리역에서 1시간30분이면 강릉역에 도착할 수 있어서 접근성도 높아졌다.
현덕사 경내에 도착하면 막 볶아낸 원두로 내려낸 구수한 커피향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뿜어내는 향긋한 솔향을 맡을 수 있다. 강릉은 경포대와 정동진, 오죽헌 등 유명관광지와 함께 최근 들어서는 ‘커피의 성지’로 불릴 만큼 커피가 유명한 고장이다. 현덕사 또한 ‘사발커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현덕사를 찾는 이라면 누구나 스님이 직접 볶아 내린 커피를 ‘찻사발(다완)’에 가득 채워 마시는 ‘사발커피’를 즐길 수 있다. 커피의 검은 색에다가 찻사발로 한가득 마시다보니 마치 “사약을 먹는 것 같다”는 첫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지만, ‘커피 내리는 사찰’ ‘커피 내리는 스님’으로 유명한 현덕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사발커피를 마시기 위해 일부러 현덕사를 즐겨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산문을 열 때부터 원두커피를 내려 차담을 이어온 현덕사는 커피 한잔을 마시더라도 그 근원을 알고 마시자며 음수사원(飮水思源)을 강조하고 있다.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들어 마시자는 뜻에서 사발커피는 시작됐다. 물론 커피를 꺼리는 이에게는 녹차나 보이차 등 전통차를 내려두고 차담을 이어간다.
현덕사는 지난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통해 템플스테이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현종스님은 아이들과 함께 고무신 멀리 날리기 게임을 하다 꽈당 넘어졌을 뿐만 아니라 소금강 물놀이, 알까기 게임 등에서 보기와 달리 허당 기질을 보이며 일약 ‘스타 스님(?)’으로 등극했다.
게다가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와 까만 피부, 무서운 얼굴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아이들을 꼼꼼히 챙겨주고 진심어린 격려를 해주는 따뜻한 마음도 전해지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덕사 템플스테이의 주제는 ‘황포돛대’, 즉 ‘황금빛 꿈을 위하여 포부와 열정의 꽃을 달아 나아가는 대자유인이 되는 현덕사 템플스테이’를 지향한다. 현덕사 템플스테이는 1박2일동안 108배와 염주 및 연등만들기, 명상, 새벽예불, 법문, 커피 체험 및 차담 등으로 수행형 및 휴식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새벽예불과 포행, 차담은 항상 현종스님이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사찰 인근 마을인 곰바우골로 떠나는 포행과 차담을 통해 자연스레 가슴에 담아뒀던 진솔한 이야기까지 서로 나누는 등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새벽예불 후 왕복 1시간30분 남짓 진행되는 포행길에서는 만월산 곳곳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마타리꽃과 구절초꽃, 진달래꽃 등 야생꽃과 다람쥐, 뻐꾸기 등 다양한 동식물을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혹시나 지역민과 만난다면 직접 기른 농작물이나 간식을 한번 맛보라며 건네주는 등 따뜻한 정도 체험할 수 있다.
대웅전 앞 전각인 정수당과 만월당의 긴 툇마루에 앉아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 덤으로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까지 간식으로 먹는다면 현덕사 템플스테이를 더없이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는 비법인 셈이다.
현덕사 템플스테이는 재방문율이 높은 절이다. TV나 언론, SNS 등을 통해 현덕사 템플스테이가 알려지면서 호기심과 기대감에서 현덕사를 찾았다가 현덕사 신도가 되거나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들려 재충전하는 마음의 안식처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 3번까지는 템플스테이 참가비를 받는데 그 이상은 받지 않는다.
처음에는 혼자서 왔다가 둘이서, 친구끼리, 가족들과 함께 현덕사를 다시 찾아와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종교를 뛰어넘어 타종교인들도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가톨릭신자가 현덕사 템플스테이를 체험한 뒤 현덕사가 정말 좋다며 자원해서 매달 ‘현덕사 후원회 기도비’를 내는 이도 있다. 현덕사 후원회 기도비는 사찰 재정에 기여하기 위해 매달 5만원 이상 보시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80여 명이 동참하고 있다.
현덕사는 동식물 천도재를 해마다 봉행하는 등 생명존중 실천도량인 ‘환경본찰(環境本刹)’로 만들겠다는 원력을 앞장서 실천해 나가고 있다. 현종스님이 유년 시절 무심코 죽였던 제비 한 마리가 출가 이후에도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합천 제비 영가’라는 위패를 만든 뒤 제비를 천도한 게 첫 인연이 돼 ‘사람으로 다친 영혼, 사람으로 치료하다’는 주제로 해마다 동식물 천도재를 올리고 있다.
특히 동식물 천도재에는 불살생 계율과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의 영가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나 국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거나 각종 개발공사로 보금자리를 잃은 오소리와 너구리, 노루 등 유주무주 동식물의 영가도 천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위패를 모신 탑다라니에도 검둥이, 누렁이, 야옹이, 고라니, 뱀 등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다양한 동식물의 이름과 더불어 부지불식간에 수없이 많은 뭇생명체들에게 해를 가했던 이들이 참회의 뜻으로 위패에 이름을 올린다.
현덕사는 또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료 49재도 올려주고 있으며 현종스님은 10년 넘게 강릉경찰서 경승 소임을 맡아 지역포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 인터뷰/ 현덕사 주지 현종스님
“억지로라도 쉬었다 가세요”
현덕사는 문턱이 가장 낮은 절을 지향한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지치고 힘들 때면 언제든지 와서 잠시라도 쉬면서 재충전하길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차담을 주로 나누는 찻방인 ‘무애당’은 작은 갤러리를 방불케 할 만큼 유명 작가의 붓글씨와 그림, 서각, 도자기, 석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한쪽 벽면에는 ‘억지로라도 쉬어 가라’는 글씨가 담긴 족자가 눈길을 끈다. 현덕사 주지 현종스님<사진>이 출가 전인 20대 청년시절,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기도하던 한 스님의 방사에 걸린 글씨가 마음에 와 닿아 현덕사를 찾는 이들과 함께 그 뜻을 나누기 위해 걸어두고 있다.
“세상은 나 없어도 돌아가기 마련인데도 현대인들은 성공과 돈을 위해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뛰어가고 있어요. 남의 말이나 눈높이에 맞춰 살게 아니라 내 마음 가는 데로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이 되죠. 언제나 힘들거나 지칠 때면 현덕사를 찾아 쉬면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되찾는 도량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앙승가대 학보사 편집장 출신인 현종스님은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 “잘 사는 게 종교입니다. 잘 살고 성공하고, 복을 짓는 것 또한 자신이 하는 거지요.” “절에 열심히 다니면서 기도할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내 행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만드는 겁니다.” 현종스님이 현덕사를 찾는 이들에게 즐겨하는 이야기다.
특히 현종스님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참 좋겠다. 좋겠어”라는 말로 상대방을 격려하며 힘을 실어준다. “부처님 법은 무상법이라 자신의 생각대로 인생도 바꿀 수 있지요.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도 될 수 있어’, ‘항상 행복해라’, ‘너는 꼭 큰 사람이 될거야’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는데 나중에 훌륭하게 성장해서 현덕사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더군요.”
강릉=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불교신문3525호/2019년10월12일자]
출처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