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백과를 수확하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가을하면 수식하는 말이나 글들이 다른 계절에 비해 훨씬 많다. 옛부터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해서 하늘은 높고 말들은 살이 찐다고 하였다.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면 다른 계절보다는 확실히 높게 보인다. 지난 봄에 현덕사 텃밭과 마당가에 들깨를 심어 놓은게 기특하게도 자라 때가 되니 벨 때가 돼 같이 일손을 보태 베었다. 그런데 낫으로 베는 순간 들깨향이 진하게 확 풍겨 오는게 참 좋았다. 어렸을 때 맡아 기억속에 있는 그 냄새였다. 토종이라 더 향이 더 진하고 기름을 짜면 고소함이 훨씬 더 고소하단다. 산속에 살다보니 계절의 변화를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세세하게 느낀다. 눈으로 보고 느끼고 귀로 듣고 느끼고 몸으로 느낀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끝날때쯤 고추잠자리가 한두마리가 날아 다니는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절 마당에 산그림자가 좀더 진하게 그려지면 가을이 시작됐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감나무잎에 단풍이 들고 감나무의 감이 붉게 익어 가면 가을이다.
들녁의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누렇게 변해 가면서 피부로 느끼는 바람결에 상쾌함이 묻어 난다. 현덕사 도량에 피는 꽃을 보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안다. 지금은 목화솜꽃이 하얗게 피어있다.목화꽃은 필때는 하얗게 피었다가 질때는 아주 고운 붉은 색으로 진다. 오늘 피었다 내일이면 진다. 아주 짧게 피는 꽃이다. 꽃이 지고 나면 다래가 열린다. 옛날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 몰래 솜이 되기전의 다래를 많이 따 먹었다. 하얀속살이 부더러운면서 달콤한게 참 맛이 달고 좋다. 현덕사에 오는 나이든 사람은 추억을 먹게하고 아이들이나 젊은이에게는 새로운 맛을 알게 해 준다. 다들 신기해하고 좋아들 한다.
약사불 가는 길에 가을꽃인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고 질 때 쯤 예쁜 보라색으로 피는 용담이 무더기 무더기로 핀다. 그런데 풀이 너무나 무성하게 자라 다니기에 불편하여 절에 자주 오는 거사에게 풀을 좀 베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그 길에는 용담이 죽 피어 있었다.
풀깍기를 하면서 어떤것을 살리고 깍기란 참 성가시고 어려운 것이다. 풀을 다 베고나서 죽 둘러보니 꽃들이 그대로 예쁘게 피어 있었다. 꽃은 살리고 잡초만 벤 것이다.
"우째 꽃을 다 살렸네요" 하니 너무 예쁜 꽃이라 힘들지만 다 살렸다고 하였다. 거사님은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좋은 분이라고 칭찬을 해 드렸다.
누구나 과일을 좋아 하겠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과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감을 좋아 한다. 특히 써리를 맞은 감이면 다 잘 먹는다. 오히려 단감보다는 떫은 감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가을이면 몸무게가 는다. 지금 현덕사 감나무에는 가을 햇살을 받아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감잎은 몇일전에 강한 비바람에 다 떨어졌다. 파란 하늘과 발갛게 익어 가는 감나무의 감이 참 잘 어울리는 가을의 정취이다.
몇년전에 고향에서 구한 단성감 묘목을 열그루를 심었다. 그런데 서너그루는 죽고 대여섯그루가 살아 남았다. 극락전앞에 한그루에만 올해 첫감이 열렸다. 다른 나무에는 하나도 안 열렸는데 그 나무에는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많이 달려서 가지마다 나무로 고여 주었다. 보살님들이 화초감 같다고 하였다. 그 감이 바로 단성감이다. 그런데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아 먹지는 못 했다, 과연 어렸을때 먹었던 그 맛이 날련지 궁금하다. 감중에는 단성감이 최고의 감이라 생각된다.
해마다 가을이면 곶감을 깍아 처마밑에 매달아 말린다. 올해도 줄에 꿔어 매달아 놨다. 곶감은 오래두고 먹을수 있어 좋다. 그리고 가장 가을 다움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다. 절에는 큰 밥상이 많아서 감홍시를 만들어 먹기에 좋다. 감을 따다가 상위에 죽 늘어 놓고 홍시가 되는 순서대로 먹으면 된다. 겨울 내내 달달한 감홍시를 먹는 호사를 누리고 산다. 그리고 딴 감 보다는 감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감이 훨씬 더 많다. 감나무가 너무커서 다 딸 수가 없다. 겨우내 꽁꽁 언 홍시를 바로 따서 먹는 맛은 산사의 최고 별미이다. 물론 산새들도 같이 나눠 먹는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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