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과 인내로 행자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사미계를 받은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왜냐하면 내생에

최고로 행복하고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팔뚝 위에 물 먹인 굵은 심지를 올려놓고 불을 붙여 살갗이 타는

고통을 참으며 참회진언을 외우며 오직 부처님의 제자로 청정하게 잘 살겠다는 굳은 맹세를 했었다.

 

깨끗하게 삭발한 머리를 만져보면서 혼자 마냥 행복해서 맘속에는 환희심이 충만했었다. 회색 승복을 입은 모습을

남몰래 거울에 비쳐보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런 순수한 신심은 어디로 다 가버리고 초라한 자존심만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승복 입은 내 모습이 세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하다.

 

지난번 도박사건과 연일 계속 나오는 종단 안팎의 온갖 이야기들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가 안되고 입이 천개

만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출가하기 전에는 부처님을 우러러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목탁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확 트였고, 바람이 불어 풍경소리라도 들리면 그 소리에 맘이 찡하도록 감격했고 감동을 받았다.

 

먹물옷을 입은 스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존경심이 우러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직접 목탁을 쳐도 풍경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재가 불자님들을 진심으로 부처님처럼 대하고

모시고 싶다.

 

일반 신도님들은 아직까지도 내가 출가하기 전의 순수했던 그 불심과 신심으로 신행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재가자가 아닌 스님들이 재가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감사해야 한다.

 

다들 타종교에 가고 아니면 무종교인으로 사는데 불교인으로 살아 주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눈물이

날것만 같다.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처음 발심했던 초발심이 없어지고 무심히 흐른 세월에, 세파에

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현덕사 주지 하려고, 불사를 하려고 출가하지는 않았었다. 안거철만 되면 선원에 대중속으로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번 하안거도 방부를 들어 놓고도 못가고, 자귀로 나무깎고, 망치 두드리는 소리나 듣고 요사채

짓는 것이나 보며 안거를 대신해야 겠다.

 

출가할 때의 마음으로 열심히 수행 정진해서 부처님처럼 살고, 생각하며, 부처님처럼 중생들을 위하여 살아가려했던

결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겠다.

 

20여년 전 어느 큰스님의 법문 중에 들은 것인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가끔씩 떠 올리며 혼자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남 몰래 살짝살짝해도 나는 다 알고 있다”고 하신 말씀이다. 낮에는 새가 보고, 밤에는 쥐가 듣는다고,

누군가가 보고 듣고 있다.

 

지금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대는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 컴퓨터로 확인해보니 현덕사

법당 앞에 작은 나무 한그루 작은 돌멩이도 환하게 보이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맘만 먹으면 도청, 도촬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결론은 부처님 계율대로 잘 사는 길 밖에 없다.

 

 

[불교신문 2822호/ 6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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